교양 문화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 무식은 죄악이다.

리차드 강 2009. 4. 13. 22:41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자발적 복종 | 홍세화의 수요편지 2006/02/22

젊은 벗에게,

<자발적 복종>은 16세기 프랑스인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가 18세 때 쓴 저작의 이름입니다. 그는 몽테뉴의 벗이기도 했는데, 그의 <자발적 복종>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만큼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버금갈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저작이 한국에는 재작년에 처음 번역, 소개되었다는 점(박설호 역, 울력출판사 2004)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땅에서 누린 것과 비교해볼 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이 책은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적 지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 자크 루소 등 그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그의 이념이 갖는 근대적 성격으로 지금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령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연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는 <한겨레 마주보기>에서 만났을 때 <자발적 복종>을 화두로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자발적 복종>이 프랑스의 교육, 지식인 사회와 시민사회운동에서 놓칠 수 없는 개념으로 자리 집힌 것은 최근에 <비자발적 복종>이라는 저작이 나온 것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라 보에티는 이렇게 그의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나는 다만 하나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수백의 지역들, 수천의 도시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한 사람의 지배 체제 속에서 노예와 굴종의 상태를 전혀 죄악시하지 않고, 독재자에게 조금도 저항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무엇이라고 명명해야 할 것인가? 이 경우 비겁함이라는 단어는 결코 적당하지 않다.”

젊은 벗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바라는 것은 ‘자발적 복종’이라는 개념만이라도 품고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발적 복종”이 과거보다 오늘날 더 강력히 관철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은 지배세력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통해 지배체제, 지배질서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식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일제의 황국신민화가 곧 ‘자발적 복종 의식화’였으며, 분단 이후 반공, 안보 이데올로기가 ‘자발적 복종 의식화’의 일환이었으며, 오늘날의 국익, 국가경쟁력 강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기업가가 아님에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하기 좋은 나라’를 주장하지 못하고 따르는 것도 자발적 복종의식과 관련됩니다.

젊은 벗, 그대의 어머니는 그대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식단을 준비합니다.  그것은 그대 몸의 각 부분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되어 건강한 몸을 이루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의식세계는 어떨까요? 그대의 세계관을 이루는 요소들을 그대는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스스로 공급하고 있나요?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장악한 세력이 그대가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갖도록 노력할까요? 아니면 그들, 즉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식을 갖도록 노력할까요?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2006/02/22

편집 : 제2창간운동본부 김명희

출처 : http://blog.hani.co.kr/hongsh/1048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박설호 역| 울력| 2004.10.15 | 255p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자발적 복종>을 쓴다. 이 글은 플루타르코스의 글에 대한 평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란 설도 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이 글은 구교에 저항하던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의 지침이 되고, 또한 라 보에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과 실천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정립한 근대적 이념은 이후로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라 보에티의 논의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라 보에티의 권력관은 인민이 군주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고 볼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 그는 인민이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모든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 책의 특징

1. 열여덟의 나이에 글을 쓰다. 세상을 놀라게 하다.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자발적 복종>을 쓴다. 이 글은 플루타르코스의 글에 대한 평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란 설도 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이 글은 구교에 저항하던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의 지침이 되고, 또한 라 보에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과 실천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정립한 근대적 이념은 이후로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친구 몽테뉴가 그의 글을 부정하다.

라 보에티는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몽테뉴의 친구이다. 두 사람은 우정의 모범이 될 만한 관계를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는 서른셋의 나이에 요절한 친구의 글 <자발적 복종>을 두 번씩이나 부정한다. 한번은 이 글을 위그노 교도들이 자의적으로 왜곡해 버렸다고 하고, 또 한번은 그의 친구인 라 보에티가 열여섯의 나이에 아무런 의식 없이 습작으로 쓴 글이라며 폄하한다. 하지만 이는 라 보에티의 글이 몽테뉴 같은 친구도 부정할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3. 왜 복종하는가

라 보에티의 논의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라 보에티의 권력관은 인민이 군주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고 볼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 그는 인민이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모든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한다.

4. 인간의 본성으로서 자유와 평등

라 보에티는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는데, 그것은 자유라고 말한다. 만약 자유가 없다면 도처에 악이 창궐하게 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 어떤 맛과 흥미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라 보에티는 자연에는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이 한 가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평등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자연이 재능을 부여함에 차이가 나는 것은 “강한 자와 영리한 자로 하여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형제애를 나누게 하고, 힘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이처럼 라 보에티는 자유와 평등을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으로 보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발현된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키려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열망하기 때문이고, 또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본다.

5. 자발적 복종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라 보에티는 자유가 인간의 본성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역으로 군주가 이러한 본성을 억압함으로써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라 보에티가 보기에, 군주는 교육과 습관 그리고 유희를 통해 이러한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킨다: 라 보에티가 스파르타의 리쿠르구스의 예를 들어 설명하듯이,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개들도 자라난 환경과 교육에 따라 달리 행동한다. 그리고 무력으로 리디아를 점령한 키로스가 폭력이 아니라 사창가와 술집, 그리고 도박장으로 그 국민들을 예속시켰듯이 이러한 유희들을 통해 권력자는 인민들을 노예의 상태에 있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권력은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다수와 자신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소수와 이러한 교육, 습관, 유희 등을 통해 모순된 상태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6. 자발적 복종의 자각

인민이 군주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혁명인가? 폭력으로 군주를 없애는 것인가? 독재자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고 해서 로마에서 독재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고, 혁명을 거친다 해서 이러한 억압과 착취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의 자발적 복종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성인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과 노력 없이는 우상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스24 제공]

     

     

저자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Etienne de La Boétie (November 1, 1530–August 18, 1563)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는 삼촌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고대 문학을 접하며 교육받았고, 열여섯의 나이에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의 여러 작품들을 번역하고 또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시를 쓸 만큼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1548년 그는 당시 계몽사상의 중심이었던 오를레앙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혁명적이었던 <자발적 복종>을 집필하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보르도 지방 의회 의원에 발탁되었고, 거기서 몽테뉴와 우정을 맺는다. 당시는 신구교 사이에 종교 전쟁의 기운이 휘몰아치던 때였고, 그는 그런 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 분쟁의 와중에 서른세 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친구 몽테뉴에 의해 알려진 여러 편의 시 작품과 <자발적 복종>, 같은 글을 남겼다.

[반디북 제공]
 
목차 
옮긴이 서문 ㅣ 부마항쟁과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
1. 인민과 노예 근성
2. 단 하나로서의 자유
3. 인간의 본성과 자유
4. 폭군의 유형
5. 교육과 습관
6. 군주의 술책 - 유희적 인간
7. 폭정의 근거와 신화
8. 외로운 전제 군주
9. 인민은?

보론
1. 라 보에티의 문헌에 관하여 - 호르스트 귄터
2. 라 보에티의 작품과 그의 시대 - 하인츠 요아힘 하이도른

자료 1 세볼 드 생-마르트: 라 보에티 그리고 몽테뉴
자료 2 스피노자: 폭정 그리고 자유
자료 3 루이 블랑: 프랑스 혁명의 역사
자료 4 레오 톨스토이: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
자료 5 구스타프 란다우어: <혁명>

[알라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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