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박설호 역| 울력| 2004.10.15 | 255p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자발적 복종>을 쓴다. 이 글은 플루타르코스의 글에 대한 평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란 설도 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이 글은 구교에 저항하던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의 지침이 되고, 또한 라 보에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과 실천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정립한 근대적 이념은 이후로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라 보에티의 논의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라 보에티의 권력관은 인민이 군주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고 볼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 그는 인민이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모든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 책의 특징
1. 열여덟의 나이에 글을 쓰다. 세상을 놀라게 하다.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자발적 복종>을 쓴다. 이 글은 플루타르코스의 글에 대한 평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란 설도 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이 글은 구교에 저항하던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의 지침이 되고, 또한 라 보에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과 실천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정립한 근대적 이념은 이후로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친구 몽테뉴가 그의 글을 부정하다.
라 보에티는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몽테뉴의 친구이다. 두 사람은 우정의 모범이 될 만한 관계를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는 서른셋의 나이에 요절한 친구의 글 <자발적 복종>을 두 번씩이나 부정한다. 한번은 이 글을 위그노 교도들이 자의적으로 왜곡해 버렸다고 하고, 또 한번은 그의 친구인 라 보에티가 열여섯의 나이에 아무런 의식 없이 습작으로 쓴 글이라며 폄하한다. 하지만 이는 라 보에티의 글이 몽테뉴 같은 친구도 부정할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3. 왜 복종하는가
라 보에티의 논의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라 보에티의 권력관은 인민이 군주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고 볼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 그는 인민이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모든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한다.
4. 인간의 본성으로서 자유와 평등
라 보에티는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는데, 그것은 자유라고 말한다. 만약 자유가 없다면 도처에 악이 창궐하게 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 어떤 맛과 흥미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라 보에티는 자연에는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이 한 가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평등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자연이 재능을 부여함에 차이가 나는 것은 “강한 자와 영리한 자로 하여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형제애를 나누게 하고, 힘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이처럼 라 보에티는 자유와 평등을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으로 보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발현된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키려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열망하기 때문이고, 또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본다.
5. 자발적 복종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라 보에티는 자유가 인간의 본성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역으로 군주가 이러한 본성을 억압함으로써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라 보에티가 보기에, 군주는 교육과 습관 그리고 유희를 통해 이러한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킨다: 라 보에티가 스파르타의 리쿠르구스의 예를 들어 설명하듯이,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개들도 자라난 환경과 교육에 따라 달리 행동한다. 그리고 무력으로 리디아를 점령한 키로스가 폭력이 아니라 사창가와 술집, 그리고 도박장으로 그 국민들을 예속시켰듯이 이러한 유희들을 통해 권력자는 인민들을 노예의 상태에 있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권력은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다수와 자신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소수와 이러한 교육, 습관, 유희 등을 통해 모순된 상태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6. 자발적 복종의 자각
인민이 군주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혁명인가? 폭력으로 군주를 없애는 것인가? 독재자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고 해서 로마에서 독재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고, 혁명을 거친다 해서 이러한 억압과 착취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의 자발적 복종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성인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과 노력 없이는 우상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스24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