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문화

피에르 신부의 고백 │ 좋은 책

리차드 강 2009. 4. 22. 17:57

피에르 신부의 고백

□ 저자의 말 □

나는 50년 넘게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발언 할 기회를 가졌다. 그건 언제나 '이 땅이 인류 모두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얘기들을 나는 꼼꼼히 다시 읽고서 그 모든 글들에서 힘 있는 한두 마디 말을 건져냈다. 내가 나무도 잘 아는 말들이다.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던 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순간들에 그 말들을 떠올림으로써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먼저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 이라고 나는 줄곧 말해왔다. 오늘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형제애를 발휘할 수 있는 어른들을 필요로 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그 길을 걷도록 하자.

사랑

1 '사랑'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아예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한도 없이 천년이라도 떠들 수 있는 그런 말이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그것은 안벽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존재' 그 자체이다.

2 우리는 자유시간을 선고받은 처지다. 그 시간을 보다 생산적이고 인류를 위해 발전적인 것으로 만들 방법들을 고안해내지 않으면 그것은 도피와 마약, 술과 인성의 타락으로 표출될 것이다. 끔직한 저주가 될 것이다. 강 위의 배가 바람의 힘으로 나아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 바람에 밀려 가지 않으려면 강의 힘을 조종해서 노를 저어야만 하는 것이다.

3 어릴 적부터 이미 그렇다. 두 힘이 자석처럼 우리를 잡아당긴다. 한쪽 힘은 내가 우상숭배라 부르는 것 쪽으로 부추겨 이런 생각을 갖게 한다. "나, 나, 오직 나뿐이야." 다른 힘은 나눔 쪽으로 부추긴다. 이런 충동들은 어른이 되면서 한층 심해진다.

4 명백히 미완성인 세계 속에서 인간이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조금만 사랑하기로 선택하여 스스로를 자신의 무의미한 고독을 숭배하는 어리석고도 비극적인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파괴자가 되고, 세계를 망치는 자가 되며, 그 세게 또한 병든 머리를 가진 몸처럼 되고 만다.

5 인생 활용법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 다시 말해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덜 행복한 이웃을 보살피는 것임을 알라.

6 믿는 건 사는 것이요, 사는 건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건 가장 고통받는 자를 '먼저 보살피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습은 세속적인 것 안에 있다.

7 우리가 자유를 보듬을 만큼 충분한 사랑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자유를 중히 여긴다고 말하길 그만두자, 사랑이 빈곤을 없앨 수 있도록 자유가 사랑에 종속되지 못할 때, 빈곤이 참으로 자격미달인 그 자유를 파괴하는 걸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8 권력으로 하여금 여론을 신경 쓰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이라면, 과반수라는 숫자의 노예가 되게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의 맹점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들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는다.

9 인간에게는 사랑을 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 인간이 자유로운 건 사랑을 하기 위해서이다.

10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랑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11 자비롭다는 건 단지 베푸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상처에 상처받았고, 또 상처받는 것이다.

12 인생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 우리가 배우길 원한다면 말이다.

13 금세기는 그 어는 때보다 프란체스코 성인과 같은 분을 기다리고 있다. 삶이 돈보다 가치 있으며, 사람이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기에 앞서 베품임을 행동으로 보여줄 분이 말이다. 그때가 되면 '기쁨'과 '평화'라는 말이 현실이 될 것이며, 제 의미를 되찾게 될 것이다.

14 분노는 받은 사랑을 드러낸다.

15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도 그 큰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내게는 나의 운명을 환수할 수단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16 전사회적 규모의 자선의 양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17 친구들이여, 모든 사람에게 정의가 돌아가게 하려는 배려야말로 삶에서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말라.

18 세상의 모든 돈으로도 결코 인간을, 그것도 서로 사랑하는 인간을 만들 수는 없음을 누가 알지 못하랴. 서로 사랑하는 인간들만 있다면 모든 걸 만들 수 있다. 행복도, 진정한 평화도, 꼭 필요한 돈까지도.

19 모든 사람을 항상 사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이미 천국을 항해 걷는 것이다.

20 이 세상 그 누가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허기를 채울 만큼 무한히 사랑받기를 어찌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저 '함께 있는 것', '같이 있는 것' 만이라도 생각하자.

21 우리가 사랑하는 살마들을 존중하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아파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는 것임을 말이다.

22 사랑은 함께 나누는 것이 본질임에도 효율성이 가장 큰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항시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해. 내일을 위해 그에게 낙원을 만들어주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난 전제군주가 되겠어. 전제군주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이름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폭정은 사랑하는 행위를 파괴하는 버섯이다.

23 반항은 참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악 앞에서, 힘없고 억눌리고 착취당한 자 앞에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마음속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을 불러 만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4 솔직해보자! 이런 저런 방법으로, 이런 저런 순간에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의지와 이성을 전적으로 거역해서건, 그저 예기치 않은 반사적 행동에서건,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게끔 통제된 내적 동요에서건 간에......, 조금 더 솔직해보자! 우리와 같은 피부색과 얼굴 특징을 갖지 않은 낮선 이방인이나 타인을 대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이 가난할 때 우리 안에서 혐오감이, 혹은 은밀한 두려움(이 두려움이 어찌 곧 적의로 발전하지 않겠는가)이 솟아나지는 않았는가?

25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 그것은 사랑하는 인간이다.

26 눈물을 통해서일지언정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기쁨이다.

27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도 많고 부유한 사람도 너무 많다. 나눔이 절실하다.

28 사랑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에 달린 것도 아니요,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달린 것도 아니다. 사랑은 내게 사랑받음으로써 나를 사로잡는 것에 달렸다.

29 본질적으로 인류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비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투쟁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후자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그들과 더불어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한다.

30 나는 함께 나누는 사회를 꿈꾸며 이를 위해 싸운다.

31 나는 사랑하고 베풀고 나누는 법을 배울 행운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생각한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그보다 더 좋은 으뜸패가 어디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다 그만 타인들을 잊고 말지 않는가.

32 삶의 근원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33 살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경험들이 우리의 정신을 형성한다.

34 "하느님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라고 청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하고 싶다. "사람을 사랑하시오!......, 고통을 받게 될지언정, 너무도 불완전할지언정 진심으로 사랑하시오."

35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누구나 자신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우리는 오직 사랑 위에서만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다.

36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존재하며, 그 존재들이 사랑할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면 인간의 미래는 희망적일 것이다.

37 이동과 소통 수단이 빨라져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모든 걸 알도록 선고받은 우리는 자신의 삶을 완수하기 위해 사회의 균형에 반드시 필요한 나눔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8 인생은 우리가 부여하는 색채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사랑을 듬뿍 담는 것이다.

39 언젠가 한 어린 소녀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교리에 대해 설명해주신 걸 듣고 나니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준 건 실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가 없었더라면,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법에 복종해야 했더라면 그 많은 범죄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에요." 그러자 소녀의 엄마는 이렇게 딸을 이해시켰다. "그래, 그랬더라면 아마 악은 없었겠지. 하지만 너는 널 사랑하는 엄마를 갖지도 못했을 것이고, 너도 엄마를 사랑할 수 없었을 거야."

40 은하계 전체를 두고 볼 때, 너무도 작기만 한 행성을 잠시 거쳐 가는 미미한 존재들인 우리가 없었더라면, 보잘것없이 작지만 자기숭배를 하거나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를 지닌 이 존재들이 없었더라면, 그렇다. 우주는 무의미했으리라.

41 "물론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어떻게 해요!" 라고 언젠가 누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말해야만 한다.

42 "나는 믿습니다."에 다름 아닌 사랑의 행위에 이르기 위해 우리들 각자가 택하는 길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나는 안다.

43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인간의 세상은 작아졌고, 지구의 몇몇 지점은 포화 상태가 되었으며, 이제는 어디를 가도 모두가 모든 걸 볼 수 있다. 이 마지막 사실은 처음 두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가장 결정적인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세상은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 세상의 반쪽은 베고픔에 잠들지 못하고, 다른 반쪽은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들지 못한다.

44 50년 전부터 소외는 사라지기는 커녕 현대 사회의 끈질긴 특징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보다 정의로울 수 있도록, 모두가 제자리를 찾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오늘날 세상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45 인간의 마음에는 두 가지 충동이 있다. 대개 적대적인 그 충동들은 너무도 자주 적대적으로 드러나, 우리는 그것들이 원래 상반된 것이요, 서로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고 기꺼이 믿는다. 두 충동 가운데 하나는 인간을 느닷없이 분노에 사로잡히게 하고, 다른 충동은 조심스레 품어야 하는 선(善)을 열렬히 갈구하게 만든다.

46 말과 현실을 깨끗이 닦는 것, 그것들을 뒤덮고 있는 먼지와 노화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 그것들이 지닌 순수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리하여 행동하는 인간들이 명료한 생각을 가지고 행돌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할 일이다......

47 우리는 양편으로 나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이는 그 어느 쪽도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언쟁의 쟁점으로 삼고 있으면서 말이다.

48 한편에는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의 지식, 다른 한편엔 대중의 상식에서 나온 모든 순박한 표현들(영광이나 절망에 사로잡혀 내지르는 헛소리나 경멸 섞인 회의주의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풀이된 강한 요구로서 나온 마들), 이들이 균형을 이룰 때, 건전한 사회를 창출하는 이 유일한 원천이 균형을 이룰 때에야 '정치'가 세상 곳곳에서 인간을 설계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그것이 큰 수단들을 가질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는 순간 곧 눈이 멀고 만다. 그리하여 대중의 고통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는 너무도 멀어진다.

49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게 처신하는 태도는 긍정적인 대답과 평화를, 그리고 '앞과위를 향해' 나아가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참된 행보를 창출하고, 용기를 북돋우고, 불을 밝혀준다.

50 우정은 행복의 순간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통의 순간들도 함께 나누게 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 나누고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고, 서로를 부축하는 것이다.

51 장차 이 시대의 역사에서 철학을 끄집어낼 사람들은 현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서,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오늘날 엄청난 위기가 소위 '선행'이라 불리는 온갖 행동들을 잠식하고 있음을 틀림없이 부각시키게 될 것이다.

52 제 아무리 자유롭다는 민족일지라도 오랫동안 주거지 없이 자유로운 상태로 남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53 행동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장막을 걷어서 대중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54 모든 인간적 사랑에는 고통이 뒤섞여 있다.

55 종종 나는 말을 함으로써, 행동을 함으로써 생각들이 명료하게 떠오른다고 주장한다. 내 경우에는 생각이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행동은 하나, 돌, 셋 점차 축적된다.

피에르 신부 Abbe Pierre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일컬어지는 피에르 신부는 1912년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세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항독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투사였으며,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살아 있는 성자'로 불리며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그는 내 가족, 내 나라, 내 민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타인과 공감하는 자'로서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종주의로 서로 싸우는 걸 볼 수 없어 참전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스위스의 험준한 산을 넘기도 했ㄱ, 게슈타포에게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전쟁 후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했지만, 곧 한계를 깨닫고는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빈민구호 활동을 펼친다. 1949년 한 사회운동가와 함께 파리 근교에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집 없는 사람들과 부랑자, 그리고 전쟁고아들의 안식처를 마련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 44개국, 350여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엠마우스 운동의 시작이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 <겨울54(un Hiver 54)>는 1989년 세자르영화상을 수상했는데 집 없는 사람들, 실업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였다.

2001년 국내에서 번역된 그의 자전적 기록 [단순한 기쁨]은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 아베 피에르신부(1912~2007년)는 20세기 후반 내내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통했다. ‘에마우스’ 전통은 인종이나 종교를 초월하는 인본적 공동체다.(사진/ EPA/ 연합/ LUCAS DOLEGA)

피에르 신부의 죽음

1월22일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한 94년간의 삶 마쳐

▣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koreapeace@free.fr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굳이 완벽해야 하는 건 아니다.’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아베 피에르 신부가 선종했다. 1월22일 새벽 5시께 파리의 ‘발 드 그라스’ 병원에서 94년간의 성스러운 삶을 마쳤다. 그리고 이틀 뒤 대중에게 문을 연 ‘발 드 그라스’ 성당 앞에는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그렇게 1~2시간씩 기다리더라도 성당 안으로 들어가 피에르 신부에게 마지막 애도를 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였다.

 

아베 피에르신부(1912~2007년)

“내 무덤에는 꽃이나 화환 대신, (앞으로) 집 열쇠를 가지게 될 수천 명의 (무주택) 가족과 아이들의 목록을 가져다달라”고 평소 말하던 피에르 신부는 “꽃 살 돈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신부의 유품인 베레모와 지팡이만 오롯이 관 위에 자리하는 아주 검소한 빈소에는 그 자리를 찾은 익명의 수많은 남녀노소들의 눈에 영근 눈물 꽃이 화려한 화환을 대신했다.

피에르 신부와 가까운 이들은 벌써 몇 년 전부터 그의 임종을 준비해왔던 터였다. 하지만 신부의 임종 뒤 “피에르 신부의 임종으로 프랑스 전체가 충격을 받았고 슬프다”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말처럼, 신부의 임종 소식은 오랜 병환 뒤에 다가온 아버지의 죽음처럼 프랑스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신부-레지스탕스-국회의원을 거쳐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에 이르기까지, 피에르 신부의 삶은 내면적으로 심오한 구도자의 것인 동시에 온갖 장벽에 맞서 현장에서 직접 싸웠던 활동가의 그것이기도 했다.

1949년 전직 목수이자 자살을 기도했던 어느 살인자에게 피에르 신부가 “죽을 작정이라면, 죽기 전에 나랑 같이 남을 돕자”면서 같이 첫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 ‘에마우스 자립 공동체’의 출발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피에르 신부는 세비를 고스란히 갖다바치고도 사사로이 빚까지 내어 공동체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나날이 불어나는 공동체이다 보니, 재정난에 부딪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재정난 타개에 보탬이 되기 위해 그가 시작한 활동은 넝마주이였다. 소비활동의 소외자들이 소비사회가 버린 쓰레기를 뒤져서 건진 물건들을 팔아 집을 짓는 자재를 마련했다. 이런 전통은 ‘재고품 수거’로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든 문을 열어주며,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보다 존중하는 것이 피에르 신부의 신념이자 에마우스 공동체의 정신이다.

1953년 정식으로 에마우스 협회가 결성됐고, 1954년 겨울 전례 없는 혹한으로 노숙자들이 목숨을 잃어가던 상황에서 피에르 신부의 ‘친구들이여 도와주세요’라는 라디오 선언과 더불어 에마우스는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연대의 전통에 기반해 세워진 에마우스는 사회에서 버림받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절망을 자재로 희망을 건설해가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공동체’이기도 하다. 1971년에는 ‘국제 에마우스 협회’가 발족돼 현재 전세계에 걸쳐 4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350여 개, 프랑스에만 110여 개의 에마우스 공동체가 건설돼 있다. 그 외에도 1988년 피에르 신부 재단이 설립돼 극빈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의 여성 사제 허용과 남성 사제의 결혼 허락 등을 외쳐 보수적인 바티칸의 눈총을 받기도 한 피에르 신부였는데, 그의 마지막 저서에선 ‘사제로서 성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발언으로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나 인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신앙심을 잃은 적이 없다는 피에르 신부는 자유로운 동시에 충직한 인물이었다.

‘세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강한 자들로 향하는 길이며 그건 욕망이고 전쟁이다. 다른 하나는 약한 자들로 향하는 길이며 그건 바로 평화다.’ 피에르 신부는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는 시인이었음이 틀림없다. 시인은 죽어도 시는 남는 것처럼, 성인은 숨졌지만 그 정신은 남게 되기를.

【외신종합】 세계적 빈민구호단체 엠마우스의 창시자 아베 피에르 신부가 22일 파리 발 드 그라스 군 병원에서 폐 감염으로 선종했다. 향년 94살.

한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이들 자립을 위해 헌신해온 피에르 신부는 '빈민의 아버지'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프랑스 양심의 상징' 등으로 불리며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프랑스 언론이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피에르 신부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가장 좋아하는 인물' 단골 1위다.

1967년과 93년 두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피에르 신부는 67년 방문 때 한국 엠마우스 창설의 디딤돌을 놓았다. 이후 75년 당시 명동본당 주임이던 고(故)김몽은 신부가 서울 영엠마우스를 창설해 국내에도 엠마우스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다. 또 피에르 신부는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 「단순한 기쁨」 「신부님, 사람은 왜 죽나요?」 등 여러권의 저서를 통해서도 국내에 알려졌다.

1912년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피에르 신부는 부유하고 편한 삶을 포기하고 1930년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해 1938년 사제품을 받았다. 본명은 앙리 앙투안 그루에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며 사용했던 암호명 '피에르 신부'를 평생 사용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6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대변했다.

1949년 창설된 엠마우스는 피에르 신부가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살인범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피에르 신부는 살인범에게 "죽기 전에 나를 도와주시오. 당신이 도와주면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 한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 것이오"라며 설득하여 파리 교회에 있는 낡은 건물을 수리해 노숙자들을 위한 숙소를 만들고 자립공동체 엠마우스를 만들었다.

피에르 신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노벨 평화상 후보로 여러번 거론됐다.

CARMEN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 Habanera

비제 카르멘 중 하바네라

Bizet, Georges (1838~1875)

Filippa Giordano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