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돈키호테가 참여하는

서로 의지하고 살았던 님을 보내고 │ 아름답게 살다가...

리차드 강 2009. 4. 14. 14:08

서로 의지하고 살았던 님을 보내고

가톨릭노동장년회 서울대교구 누룩팀 박 요안나 글

25년 전 오영진 올리비에 신부(현 프랑스 생드니 교구 주교)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방카타리나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카타리나씨는 26년 전 구로1동(현 구로본동) 성당 오영진 신부님의 식복사로 일했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고아원을 거쳐 교회 안에서 수녀님들과 살다가 오 신부님을 따라 구로 동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카타리나씨가 사회생활에 적응하기에는 경험이 없어 걱정이 되셨던지 가노장 회원이라면서 저에게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남의 인연으로 23년을 한 가족처럼 살았습니다. 처음 함께 살 때는 제가 너무 가난했었고 단칸방에서 살대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짜증도 많이 냈었고 눈치도 많이 주었는데 어쩌다보니 저희 옥탑 방에서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지금은 하느님 나라에서 잘 살고 있겠지 믿으면서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여기에 나의님의 삶을 몇 자 적어봅니다.

그녀는 제일 낮은 자리 회사에서 청소일을 해왔습니다. 정말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십일조를 냈었고, 성당에서 빈체시오 활동을 하면서도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했던지 평생 옷 한 벌 사 입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옷은 늘 단벌옷이며 운동화는 4개절용 이였습니다. 회사에서 명절 때 비누셑트를 받으면 빈체시오 가정에 다 나누어주고 비누 한 장 치약하나 달랑 들고 오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늘 보았습니다.

때로는 질투심이 생겨 우리도 비누가 없다고 하면서 남들만 나누어 준 것에 대해 비아냥거리면 욕심 부리지 말라고 그때마다 질책을 많이도 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살면서 의견 충돌이 있어도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세상 법을 논했고 카타리나씨는
하느님 법 율법으로 나를 늘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저희 시골 친정에서 감자나 고구마 등 갖고 오면 어느새 이집 저집 필요하다며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감추어놓고  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안 쓸려고 했고 남을 위해서는 아까워하지 않고 주고만 살아온 오늘날에 토빗에 삶을 살다가 3년 전 위암선교를 받고 투병생활 끝에 지난 6월 하느님 곁으로 간사람 우리 카타리나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라.

예수님께서 25년 전에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인 카타리나를 요안나에게 보내주셔서 믿음에 삶을 직접 보여준 사람 나의 님, 그동안 나에게 사랑하는 법과 자선하는 법까지 보여 주면서 늘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해주었지! 큰딸이 많이 아팠을 때 애들이 사춘기때 속 썩일 때, 남편과 싸웠을 때 남편이 직장이 없어 의기소침에 있을 때, 애들이 공부를 못해서 진학 못했을 때, 내가 직장에서 해고 당했을 때 내가 아팠을 때, 큰딸 병원비 가없어 고민할 때 성당에 가기 싫다는 투정까지 다 묵묵히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었던 하느님의 사랑 엘리야였던 카타리나! 지금은 하느님께서 데려 간사람 나의사랑 나의 벗 나의님 보고 싶다.

가끔은 하느님께 이런 기도를 나는 많이 했는데 하느님 요안나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고 주님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너도 가서 카타리나처럼 살아라.

내가 카타리나를 통해 20년을 요안나 너에게 보여주지 않았느냐? 하는 주님의 음성이 오늘 하루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카타리나가 보여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하루하루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나누고 돌아간 방선녀씨

(평화신문 7월8일 928호 인용 서영호 기자)

“돈이든 집이든 제가 가진 것은 모두 하느님께 잠시 빌린 것입니다”

평생 남을 위해 나눠주는 삶을 실천해온 방선녀(카타리나.57. 서울구로본동본당)씨가 이 같은 사연과 함께 자신에게 마지막 남아 있던 집과 보험금을 모두 봉헌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위암으로 3년 동안 투병하다 6월26일 선종한 방씨는 자신이 살던 7000만원 상당의 집을 치매노인요양시설 건립기금으로 기부하고, 저축성보험과 사망 보험금을 포함해 6640만원을 한마음 한 몸 운동본부에 기증했다.

방씨가 내놓은 빌라와 보험금은 결혼도 하지 않고 사제관 식복사와 건물 청소일 을 하며 평생 모은 재산이다. 구로본당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창립 회원으로 25년여 동안 활동해온 방씨는 평생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않고 버려진 옷을 주워 입는 등,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도 남 돕는 데는 아끼지 않았다.

번돈은 모두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했고 틈만 나면 복지시설에 나가 봉사활동을 했다. 고인과 함께 빈체시오회 활동을 해온 김부형 도미틸라 씨는 “고인은 당신 소유라고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평생 이웃사랑을 통해 자신을 비우며 살아온 분” 이라며 “신앙적으로는 누구보다 부유하게 하느님 안에서 사신 분” 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6월28일 서울구로본동 성당에서 구요비(현 가톨릭대 영성지도 교수)・유철(구로본동주임)신부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으며, 유해는 파주시 광탄면 종로성당 묘원에 안장됐다.

이글은 서울대교구 가톨릭 노동장년회 회원이신 박요안나 자매님의 글입니다.

글 출처 : 한국 가톨릭 노동장년회

Nocturne in E-flat major, Op. 9, No.2

Frederic Francois Chopin 1810 ~ 1849 / 폴란드

Jazz

 

Vladimir Shafranov, Piano

Pekk Sarmanto, Bass

Jukkis Uotila, Drums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