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칸타타
바흐는 그의 생애 마지막 27년간(1723년 ~ 1750년)을 라이프찌히에서 보내게 된다. 라이프찌히에서 교회 칸토르로서의 그의 주된 임무는 매 주일 예배에 사용하기 위한 칸타타를 쓰는 것과 축일 등에 사용될 곡들을 쓰는 것이었으며, 부수적으로 사소한 교회행사를 위한 곡을 쓰는 것과 학교에서의 강의 등이 포함되었다.
1792년까지 그는 4번의 칸타타 사이클을 통하여 그의 수많은 칸타타 중 대부분을 이 시기에 쓰게 된다. 또한 4개의 수난곡, 2개의 오라토리오, 7개의 모테트 중 상당수의 성악곡이 이 시기에 쓰여졌으며, 이외에 하프시코드나 오르간 등의 건반악기 독주를 위한 작품들과 하프시코드 협주곡과 관현악 모음곡 중 일부 등이 바로 이 시기에 작곡되어졌다.
특히 세속적인 성악곡들과 기악곡들은 그가 책임을 맡고 있던 일종의 대학음악 써클과 같은 형식의 콜레지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이라고 불리우는 아마츄어 음악 모임을 위해 많이 작곡하였는데, 그는 정기적인 이 모임을 통하여 교회로부터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롭게 그 자신을 위해 곡을 썼으며, 이를 통해 그는 기악곡이나 세속적인 작품에 대한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시기는 그의 생애 중 다작의 시기였으며,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집을 출간하고 개인적인 독주회도 가지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시기였다. 바흐는 그의 모테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세속 칸타타를 어떤 특별한 행사 즉, 생일이나 결혼, 신년 축하, 명명일, 대관식, 졸업식, 장례식 등의 행사에 사용하기 위한 곡을 썼다.
그의 세속 칸타타들은 대부분이 라이프찌히 시절에 쓰여진 것으로 솔로 칸타타에서 8성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반주도 오블리가토가 있는 하프시코드 솔로 반주에서부터 팀파니가 있는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 반주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이 바소콘티누오가 붙은 것으로 50여곡의 세속 칸타타를 썼다고 알려지나 반이상이 분실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20여곡 정도이다. 가사는 피칸더(Picander)라는 필명을 가진 크리스챤 프리드리히 헨리치(Christian Friedrich Henrici : 1700 ~ 1764)라는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이 많다.
그의 세속 칸타타는 보통 극음악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비롯 바하가 오페라를 쓰진 않았지만 그의 이 오페라 부타(Opera Buffa)에 가까운 칸타타들은 모차르트나 롯시니의 오페라와 비교해 볼 때 그들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오페라부터에서 빠질 수 없는 소란하고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의 처리나 플롯의 전개 등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바하의 세속 칸타타가 독일의 징슈필이나 초기 오페라 부파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