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페뜨 갈랑뜨 - 화려한 잔치 Claude Debussy 1862~1918, 프랑스 Barbara Hendricks - Michel Beroff, pian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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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erlaine, Fetes galantes "품위 있는 잔치 I" 은 세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1. En sourdine 은밀하게
Calmes dans le demi-jour Que les branches hautes font, Penetrons bien notre amour De ce silence profond. Fondons nos ames, nos cours Et nos sens extasies, Parmi les vagues langueurs Des pins et des arbousiers, Ferme tes yeux a demi, Croise tes bras sur ton sein, Et de ton cour endormi Chasse a jamais tout dessein. Laissons-nous persuader Au souffle berceur et doux Qui vient a tes pieds rider Les ondes de gazon roux. Et quand, solennel, le soir Des chenes noirs tombera, Voix de notre desespoir, Le rossignol chantera.
2. Fantoches 허수아비
Scaramouche et Pulcinella Qu'un mauvais dessein rassembla Gesticulent, noirs sur la lune. Cependant l'excellent docteur Bolonais cueille avec lenteur Des simples parmi l'herbe brune. Lors sa fille, piquant minois, Sous la charmille, en tapinois, Se glisse demi-nue, en quete De son beau pirate espagnol, Dont un langoureux rossignol Clame la detresse a tue-tete.
3. Clair de lune 달빛
Votre ame est un paysage choisi Que vont charmant masques et bergamasques Jouant du luth et dansant et quasi Tristes sous leurs deguisements fantasques. Tout en chantant sur le mode mineur L'amour vainqueur et la vie opportune, Ils n'ont pas l'air de croire a leur bonheur Et leur chanson se mele au clair de lune, Au calme clair de lune triste et beau, Qui fait rever les oiseaux dans les arbres Et sangloter d'extase les jets d'eau, Les grands jets d'eau sveltes parmi les marbres. | |
Jean-Antoine Watteau 1684-1721 로코코 미술은 그 어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실내장식의 혁명이었지만 이 혁명이 회화의 개혁을 가져왔다. 18세기의 실내는 전 세기의 웅장한 실내보다 그 규모가 축소되었고 엄숙한 틀을 버리고 장식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실내에 어울리게끔 회화 역시 소형이 되었고 색조와 주제도 밝고 경쾌해졌다. 이러한 새로운 회화의 출발을 알린 화가가 장 앙투안 바토(Jean-Antoine Watteau)인데, 의상과 풍속과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가벼운 붓 놀림과 풍부한 색채로 당시의 행복한 삶의 분위기를 무대 효과와 같은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그가 1717년에 왕립 회화 아카데미의 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제출한 『시테르 섬으로의 출항(L'Embarquement pour Cythere)』은 야외에서의 사랑의 유희를 환상적으로 묘사하여 ‘우아한 연회(fetes galantes)’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 별명은 로코코 시대에 유행한 그림의 일반적 호칭이 되었다. 바토의 시적 경향과 애수보다는 경박하고 표면적인 우아함을 추구했던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는 신화를 주제로 관능적인 인물 군상을 그렸다. 부셰의 제자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 Honore Fragonard)는 아름다운 풍경 속의 사랑의 유희를 따스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필치로 표현하는 한편 어린이나 가정의 정경을 즐겨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들과는 달리 로코코 양식에 맞서 사실주의적 경향을 추구하였던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뎅(Jean-Baptiste-Simeon Chardin)은 자신이 속한 중산층 가정의 실내 풍경과 그곳에 놓여진 사물을 담은 정물화(『가오리[la Raie]』[1728])와 이 계층의 일상생활을 담은 풍속화를 그렸다. 역시 로코코 양식을 거부하였던 장 밥티스트 그뢰즈(Jean-Baptiste Greuze)는 그의 일화적인 풍속화 속에 도덕적·교훈적 의미를 담는 동시에 농민의 소박한 미덕을 그리려 하였다. 반면 모리스 캉텡 드 라 투르(Maurice Quentin de La Tour)는 당시에 유행한 파스텔 초상화를 통해 화려한 귀족 사회를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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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grimage to Cythera Oil on canvas; 129 x 194 cm;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http://bbs.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100&maingroup=2&filenm=u90120%2D2%2817%29%2Ejpg)
Pilgrimage to Cythera (detail) Oil on canvas; 129 x 194 cm;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http://bbs.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100&maingroup=2&filenm=u90120%2D3%2815%29%2Ejpg)
The Embarkation for Cythera 1717; Oil on canvas, 129 x 194 cm; Musee du Louvre, Paris ![](http://bbs.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100&maingroup=2&filenm=u90120%2D4%287%29%2Ejpg)
The Embarkation for Cythera (detail) 1717; Oil on canvas, 129 x 194 cm; Musee du Louvre, Paris
바토는 종교적 신화적 의식화를 대신하여 화사한 풍속화를 그렸다. 바토는 자신이 단지 국외자로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귀족사회의 생활을 그렸다. 페트 걀랑트fetes galantes는 우아한 향연이란 뜻으로 바토의 작품 이름이자 바토의 작품세계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바토에게 있어서는 [시테르섬에의 출범]에서는 신화와 현실의 구분 자체가 애매하다. 어느 가을날, 해가 저물어가고 큐피드 무리가 날아오르는 가운데 사교계의 신사숙녀들이 남녀 짝을 지어 배를 타러 내려가고 있다. 이것은 [사랑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운동과 빛과 공간감이 넘치고 있고 등장한 많은 인물들이 떠들석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루벤스의 그림에 비해 바토의 풍속화는 지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쁨에도 불구하고 애조를 띄고 있다. 바토의 그림에는 욕망을 남김 없는 소진해버린 몰락하는 계급의 비극이 숨어 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전원은 천진함과 단순성이라는 목가적 상태에 대해 추파를 던지는 교태일 뿐이다. |
Paul Verlaine 폴 베를렌 1844-1896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로렌주(州) 메스 출생하여 7세 때에 파리로 이사. 파리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하였으나 중퇴하고, 파리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한다. 22세에 《현대 고답시집(高踏詩集)》에 7편의 시를 발표하고 처녀시집 《토성인의 노래 Les Poemes Saturniens》(1866)를 출판한다. 이어 근대의 우수와 권태를 노래한 제2시집 《화려한 향연 Les fetes galantes》(1869)을 발표. 제3시집 《좋은 노래 La Bonne Chanson》(1870)는 약혼녀에 대한 사랑의 정을 담고 있다. 이 해 결혼하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자 입대하였다가 1871년에는 파리코뮌의 봉기를 지원한다. 이 무렵 젊은 시인 랭보와 동거를 하여 부부생활에 불화가 찾아온다. 랭보와 함께 벨기에와 런던을 방랑하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해 랭보와 논쟁을 벌이던 중 권총을 쏴 그의 왼손에 상처를 입힌 탓으로 2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다. 복역 중에 제4시집 《말없는 연가(戀歌) Romances sans Paroles》(1874)를 출판하고, 아내와 이혼. 출소 뒤 제5시집 《예지(叡智) Sagesse》(1881)를 내놓았다. 한때 시골중학교 교사를 했으나 한 제자와 동성애에 빠진 데다 주벽이 되살아나 면직을 당한다. 그 뒤 추문과 빈곤의 비참한 만년을 보낸 끝에, 1896년 1월 어느 낡은 집방에서, 동거하던 창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에 간행한 시집은 20권에 이르며 시편은 840편이나 된다. 이 밖에 랭보, 말라르메 등 근대시의 귀재(鬼才)들을 소개한 평론집 《저주받은 시인들 Les poetes maudits》(1884), 회상기 《나의 감옥 Mes prisons》(1893) 《참회록 Confessions》(1895) 등의 저서도 유명하다. 1894년에 그는 시왕(詩王)으로 선출되고, 세기말을 대표하는 대시인으로 숭앙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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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