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미안해요 베트남 - 박치음│숨겨진 좋은 노래

리차드 강 2009. 4. 22. 21:30

미안해요 베트남 - 박치음 교수

미안해요 베트남 2000

박치음(박용범) 교수

Track. 04 - 미안해요 베트남!

 

Introduction

미안해요 베트남

이 음반은 진실을 찾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전쟁은 비극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죽고, 집이 무너지고, 꽃과 나무와 풀이 짓밟히고, 어쩔 수 없이 엄마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가 생겨나서 비극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던 지난 시대의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다. 경위야 어찌 되었던 한국도 그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때 거기서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뒤늦게야 우리는 한국군이 거기서 많은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은 분명히 게릴라 전쟁이었다. 게릴라 전쟁은 그 특성상 적군과 양민을 구별하는 일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게 한국군이 베트남의 양민을 학살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덮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단 한사람의 베트남 양민이 학살당했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잘못일 수 밖에 없다

그 잘못을 인정하는 일,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진실을 향한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이 음반 또한 그런 행진의 한 표현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론화 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었다. 그때부터 많은 한국시민들이 역사를 바라보고 나아가 베트남에 대한 어떤 형태로든 사과를 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미안해요 베트남!

마침내 2000년 초여름,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은 힘을 모아 이런 제목의 공연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이 음반은 그때 그 현장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 기록이 일부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위무하는 하나의 증거로서 받아들여지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건대, 현 단계에서 이것은 양심의 기록이라기 보다 더 많은 침묵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이 음반을 끔찍한 고통을 당한베트남인들에게 바친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당신과 마주선 곳은 서글픈 아시아의 전쟁터
우리는 가해자로 당신은 피해자로
역사의 그늘에 내일의 꿈을 던지고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 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 자욱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런 흔적마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떤 변명도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신의 아픈 상처를 씻을 수 없다는 거 알아요
그러나 두손 모아 진정 바라는 것은
상처의 깊은 골 따라 평화의 강물 흐르길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 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 자욱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런 흔적마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ㅁㅁ 씬 로이 Viet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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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가 Vietnam어로 '씬 로이' 같은데..ㅁㅁ는 잘 모릅니다.

     

'정말 미안해요 베트남!

1200명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사이공, 그날의 노래’

(◀ 사진/피날레. 가수 김영남씨가 아름나라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미안해요 베트남’을 부르고 있다)

“딴따라 생활 10년 만에 경찰 엄호받으며 공연해보긴 처음이네요.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인데요.” 정치색을 띤 공연을 할 때면 주로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면서 무대로 올라가야 했던 ‘운동권’ 가수들은 격세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지난 7월6일 서울 상도동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열린 ‘사이공, 그날의 노래’. 지난 30년간의 침묵과 방관을 반성하는 이날 공연에는 장사익, 권진원, 이정열, 천지인, 어어부 프로젝트 등 12개팀의 가수들과 1천2백명의 관객이 모였다. 공연장 밖에서는 고엽제전우회 차량에 의한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공연은 시작시간에서 5분이 지난 7시5분, 타악그룹 공명의 흥겨운 연주로 시작됐다.

(▶사진/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공동대표 이해동 목사(왼쪽)가 정신대 보상금 4200만원을 베트남을 위해 쾌척한 문명금 할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은 베트남의 인민이나 우리나라 병사들에게 모두 잊혀지지 않는 악몽일 겁니다. 이번 공연과 같이 우리의 작은 목소리들이 쌓여나가면 두 나라 사이에 화해와 용서의 장이 저절로 열리지 않을까요?” 문화방송노조 노래패의 공연 뒤 등장한 권진원씨는 인기곡 <살다보면>을 불러 무대를 달궜다. 포크 가수 이지상씨는 베트남인 톤 롱 히엔이 전쟁에서 죽은 부인 레 티 응옥을 위해 썼던 사모곡(<한겨레21> 305호 보도)에 노래를 붙인 <베트남에서 온 편지>로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역시 베트남의 비극을 주제로 만든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 어어부 프로젝트의 연주는 책상과 스탠드, 타자기를 무대로 옮겨놓고 향을 피우면서 진행되어 한편의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술병과 잔을 들고 베트남 전통 춤을 선보인 베트남 국립가무단)

‘회상의 길목’, ‘야만의 역사’, ‘화해와 공존’이라는 테마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는 영상과 함께 문성근씨의 내레이션으로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베트남전의 가슴 아픈 진실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전 출연진과 노영심씨, 아름나라 어린이합창단이 협연한 마지막 곡 <미안해요, 베트남>이었다. 이 노래는 80년대 이름을 날린 운동가요 작곡자이자 가수인 박치음 교수(순천공대)가 만든 곡으로,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노래의 후반부에는 박 교수가 무대 한켠에서 직접 노래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부인, 네살된 아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온 백건우(39)씨는 공연장을 나오면서 “이런 문화공연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당부했다. “<한겨레21>의 기사를 보면서 베트남전 양민학살의 참혹함에 대해서 처음 알았고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것같아요. 이런 공연들이 늘어나면 뜻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2000년07월14일 (제317호 인터넷 한겨레21)

     

'미안해요 베트남' 세계로!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진혼곡, 각국 비정부기구와 유엔 등에 전달된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전장터의 한가운데서 떨고 있는 젊은 병사. 그의 군모엔 붉은 원의 히노마루(일본 국기)가 새겨져 있다. 병사는 위안소를 드나들며 조선에서 끌려와 성노예가 된 위안부에게 ‘인간적인’ 사랑을 느낀다.

화력으로 무장한 그의 부대는 적을 향해 무차별 난사하지만 죽창을 든 초라한 독립군 몇명이 결국 그를 포함한 부대원 전원을 ‘잔인하게’ 몰살시킨다.

만약 일본의 인기가수가 이런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면? 아마 한국의 신문들은 이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을 대서특필하고 젊은 해커들은 사이버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아시나요>의 몰역사성과 결례를 넘어

(◀ 사진/올해 최고의 음반판매를 기록한 조성모의 <아시나요>.그러나 베트남전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상상만으로도 경악스럽다고 호들갑떨 일이 아니다. 올해 한국대중음악계에서는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노래말과는 무관하게 베트남전을 위와 비슷한 내용으로 엮은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비디오는 최근 한 음악채널이 선정한 ‘올해의 뮤직비디오’로 선정됐다. 이곡이 수록된 조성모의 3집 앨범은 200만장 이상 팔려나가며 올해 최고의 음반판매를 기록했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의 화려한 스펙터클과 병사로 분한 조성모의 처연한 표정에 감탄하며 무의식적으로 다시 한번 베트남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셈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음반 <미안해요 베트남>은 베트남전의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진혼곡이자 <아시나요>가 범한 ‘무심한 결례’에 대해 베트남의 동시대인들에게 전하는 사과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지난 7월 서울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열렸던 베트남전쟁 희생자를 위한 진혼공연 ‘사이공, 그날의 노래’에 참가했던 음악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베트남 국영방송사로부터 지난 공연의 기록을 특집방영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데 뜻을 같이한 음악인들이 모였습니다.” 음반기획자인 박치음 교수(순천대)와 원일, 노영심, 어어부 프로젝트, 이지상, 타악그룹 공명이 지난 10월부터 녹음작업에 들어간 이 음반의 5곡 수록곡들은 모두 순수창작곡들이다. <미안해요 베트남>(박치음, 김영남, 아름나라 어린이합창단), <으깨진 감자>(어어부 프로젝트), <베트남에서 온 편지>(이지상) 등 공연에서 소개됐던 곡들은 재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가다듬어졌고 <눈물꽃>(원일), <모퉁이에서>(노영심)등은 새롭게 작곡되었으며,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공명의 서정적인 연주도 추가되었다.

음반의 제작과정은 그리 순탄히 않았다. 무엇보다 돈문제가 일정 진행을 가로막았다. 최소한 2천만원 이상 들어가는 음반 제작에 모인 돈은 베트남전쟁진실위원회에서 내놓은 300만원과 주위에서 받은 후원금 200만원. 참여음악인들의 무제한대 노고와 녹음스튜디오의 넓은 아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원래 지난 11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맞춰 두 나라의 수반에 나란히 전달하려고 했던 이 음반은 예정보다 출반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나가게 된다. 의미는 다르지만 서태지나 H.O.T도 못했던 전세계 진출을 하게 되는 최초의 한국음반이 되는 것이다. 비상업적 유통을 전제로 제작되는 2천장 한정판 가운데 1천장이 미국의 백악관을 비롯한 전세계 정부와 비정부 기구, UN, 그리고 평화운동 단체에 전달된다.

베트남 현지공연도 기획중

 

(▶ 사진/음반작업을 하는 박치음교수.한장의 음반을 통해 전쟁희생자들에 대한 사과운동의 국제적 연대의 끈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 음반은 전세계에 20세기의 최악의 침략전쟁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리는 의미뿐 아니라 지향점을 잃고 헤매는 평화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전의 진실을 호소하는 한장의 음반을 통해 전쟁이라는 인류 공통의 문제를 이끌어내고 전쟁희생자에 대한 미국과 한국 등 가해국가의 사과운동을 위한 연대의 끈을 만들겠다는 것이 박치음 교수를 비롯한 참가음악인들과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의 야무진 꿈이다.

국내에서 출시되는 1천장의 음반도 기존의 상업적 유통경로를 배제하고 인터넷이나 NGO, 대학가 서점 등 ‘원하는 이’들이 스스로 찾아가서 구할 수 있도록 해, 좀더 건강한 유통구조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선데이 서울>을 읽으며 즐거워할 때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던 1천명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주축이 됐습니다. <미안해요 베트남> 역시 조성모의 노래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21세기 평화운동에 있어 <전환시대의 논리>와 같은 의미로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작에 참여한 음악인들은 음반 출시를 기념해 베트남 현지에서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전쟁을 넘어 평화로’라는 타이틀로 열리게 되는 이 공연은 지난해 전 재산을 베트남진실위원회에 기탁한 문명금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베트남에서 ‘평화역사관’의 기공식이 열리는 날 베트남의 음악인들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음반구입 및 후원문의:베트남전 진실위원회 02-3675-5810).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2000년12월20일 제339호 한겨레 21)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