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Credo - Andrea Bocelli
지난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는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1978년 가톨릭의 제 264대 교황으로 추대된 요한 바오로 2세는 냉전시대로부터 구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 그리고 이라크전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세계사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쉼 없는 종교 활동을 했고, 이를 통해 가톨릭의 종교적 힘을 다시 한 번 일으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과거의 교황들과 달리 다양한 대중적인 스타를 만나고, 열정적인 해외 방문과 공개 미사 등을 통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정치적 현안에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해 가톨릭과 교황의 이미지를 혁신한 것은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위대한 종교 지도자면서 새로운 매스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에 가톨릭과 교황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준 ‘스타’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교황의 서거 후 교황의 일생을 담은 각종 상품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해도 크게 놀랄 것은 없다. <크레도>(credo)는 그 중 교황의 일대기를 종교 음악과 접합시킨 타이틀이다.
교황의 일생을 담은 영상 위에 시각 장애 성악가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역시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이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한 곡들을 수록한 <크레도>는 교황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정리한 영상물 뿐 아니라 미사에 쓰이는 종교 음악들을 정리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Ave maria'가 바하와 슈베르트의 버전 등으로 연주될 뿐만 아니라 헨델의 'Frondi tenere… Ombra mai fu', 베르디의 'Ingemisco'등 종교 음악들이 교황의 일생에 맞춰 적절하게 삽입된다.
이를테면 교황의 서거로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는 모차르트의 장엄한 'Ave verum corpus'가 흐르고, 교황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 등장할 때는 격정적인 'Panis Angelicus'가 흐르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영상의 분위기와 음악이 일치된 흐름으로 흘러 교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큰 무리없이 볼 수 있고, 정명훈과 안드레아 보첼리 역시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타이틀은 교황과 종교 음악의 소개 이상의 의의를 갖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크레도>의 영상은 지나치게 교황의 화려한 대외적인 활동에만 맞춰져 있다.
물론 한 시간 남짓한 영상 안에 종교 지도자로서 교황의 철학을 온전히 담기는 어렵겠지만 이 타이틀의 대부분은 교황의 의례적인 멘트 외에는 정치가와 만나는 교황이나 귀빈석에서 올림픽 경기를 내려다보는 교황, 대중에게 환호 받는 교황등 존경받는 지도자로서의 모습만 강조돼 온 땅에 사랑과 평등, 평화를 강조한 교황의 모습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교황을 그리워하는 가톨릭 신자에게는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메리트가 떨어진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정명훈의 만남은 그 이름만으로도 클래식 팬들을 설레게 하는 것이지만, 실황 공연의 현장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사운드를 영상에 입힌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 녹음 같은 답답한 느낌으로 믹싱 돼 두 대가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풍부한 느낌을 거의 살려내지 못한다. 음악과 영상이 잘 조화된 타이틀이라기보다는 영상에 클래식 BGM이 사용됐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정명훈과 안드레아 보첼리의 만남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Ave maria'의 신실한 느낌을 너무 슬프게도, 너무 정갈하게도 소화하지 않고 감정의 고조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두 사람의 능력은 탄복할 수준이다. 그러나 스페셜 피처로 포함된 'Andrea bocelli live in tor bergata' 외에는 실황으로 연주되는 곡은 전혀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넓게 퍼지며 제대로 된 공간감을 낼수록 그 성스러운 느낌이 살아나는 종교 음악이 단지 돌비 스테레오로만 재생되는 것 역시 문제. 영상 역시 기존의 교황 관련 자료를 어떤 가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수록해 상당히 떨어진다.
그래서 <크레도>는 교황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데는 좋지만, 교황에 대한 '자료'나 가톨릭 관련 종교 음악을 접하는 통로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종교 음악의 매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 입문의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종교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또 가톨릭 신자라면 교황의 모습을 음악과 함께 감상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단지 교황을 추억하는 것이라면 <크레도>보다는 더 좋은 상품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이 타이틀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면, 그것은 가톨릭도, 클래식도 잘 모르는 사람마저 알 수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와 안드레아 보첼리, 그리고 정명훈을 한 자리에 모은 타이틀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