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 즐거운 ..

황규백 판화전│기분 UP 되는 예술은 즐거워라...

리차드 강 2014. 9. 1. 11:09

판화가 황규백 展

     

Basin and the Chair,2003,Oil on Canvas,122x102cm

     

김수철 0의 세계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1957-

인생, Life - 올림픽 음악(아쟁)

 

     

약력

1932년 부산에서 출생.
1968년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의 에콜드 루브르와 S.W. 헤이터의 아틀리에17에서 수학,
1970년 이후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전

갤러리현대 (서울) ’78 ’85 ’88 ’91 ’94 ‘04
핏츠-페브럴 화랑 (뉴욕) ‘96
크리스티 동경화랑 (일본) ’88
선화랑 (서울) ’82
므라딘스카 • 니카화랑 (유고슬라비아) ’81
브라우에화랑 (서독) ’81
해리스화랑 (텍사스) ’78
락포드대학화랑 (일리노이스) ’78
아티쟌느리 (프랑스 • 디종) ’78
데 매트르•콩땅포랭화랑 (프랑스•액상푸로방스) ’77
비카•쿤스트화랑 (노르웨이•오슬로) ’76
브렌타노화랑 (뉴욕) ’75
라 타이유 두스화랑 (브륏셀) ’75
프린트 그룹 (필라델피아) ’75
옥스포드화랑 (영국) ’75
우구스트화랑 (뮌헨) ’75
프레드리크수타트 (노르웨이) ’75
보니턴화랑 (시드니) ’70
오파베화랑 (파리) ’70

단체전

브라드포드판화비엔날레 (영국 ’70’72’74’76’80’82’84’86)
루블리아나판화비엔날레 (유고슬라비아 ’75’77’79’81’83’85’87)
크라코브판화비엔날레 (폴란드 ’75’78’80)
동경국제판화비엔날레 (일본 ’77)
피렌체판화비엔날레 (이태리 ’70’72’74)
파리판화비엔날레 (프랑스 ’72)
노르웨이판화비엔날레 (노르웨이 ’72’74’76’78)
핀랜드판화트리엔날레 (핀란드 ’78)
마법적 레알리즘 포트랜드미술관•유타미술관•페닉스미술관•봐즈미술관 (80-82)
국제판화트리엔날레 (베를린 ’90)
국제판화비엔날레 (베르나•불가리아 ’89)

수상

<<유고슬라비아•과학예술원>> 賞 (’81)
<<스코에미술관>> 賞 (유고슬라비아 ’79)
핀랜드•트리엔날레<<제1席賞>> (’78)
<<화이트•로즈화랑>>賞 (영국 ’74)
피렌체판화비엔날레<<金賞>> (이태리 ’74)
노르웨이판화비엔날레 <<第三席賞>> (’74)제1회
마이애미판화비엔날레 <<第一席賞>> (미국 ’73)
필라델피아판화협회전 <<凹版賞>> (미국 ’71)

소장

국립현대미술관(한국)
근대미술관 (뉴욕), 근대미술관 (파리),
대영제국박물관(런던), 빅토리아•알버트미술관(런던),
알베르티나미술관(비엔나), 우피치미술관(이태리),
몬트리얼미술관(캐나다), 국립미술관(오슬로),
프랑스文化省, 현대미술관(스코에•유고슬라비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브룩클린미술관 (뉴욕),
보스턴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클리블랜드미술관,
유타미술관, 포트랜드미술관, 샌프란시스코미술관

     

삶의 현실과 초현실: 황규백 화백의 작품읽기

개인전에 붙여서

김우창(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예술은 흔히 말하듯이 상상력의 소산이다. 물론 이 상상력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정화할 수도 있고 또 체계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황규백 화백 작품에서 이 두가지의 역설적인 결합을 본다. 이번의 전시회는 화백으로서는 전혀 새로운 예술적 실험의 결과를 보여주는 계기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수십 년간 그의 중요한 매체로 삼아왔던 동판의 기법을 버리고 유화를 시도하기 사작했다. 의도가 어떤 것이든, 중요한 것은 작품이 전달하는 예술적 의도이다.

황화백의 작품들은 사람 사는 세계에 대하여 중요한 명제들을 제시한다. 어쩌면 황화백은, 동판화의 기술적 어려움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이 명제들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그것을 중요한 장르를 통하여 천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장식적인 역할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심각한 내용을 가진 거대한 작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판화의 경우에, 특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작은 작품들의 경우에, 그렇게 생각되기 쉬울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큰 것이 될 수 있는 유화에 있어서는 적어도 장르적인 소품화의 제약은 벗어날 수 있다.

판화를 보고 난 다음에 이번의 전시회의 작품들을 보면, 장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수법이나 어휘 그리고 문법은 바뀌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주로한 판화의 주제들도 크게 바뀌지 아니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사의 전체적인 음조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달라진 음조는 “풀 위의 흰 장막 White Sheet on the Grass”에서 극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이 그림의 구성요소는 1973년 이후에 창조적 에너지의 근원이 되었던 “풀 위의 흰 손수건”과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의 장막은 적어도, 화면에 나타나는 바로는 손수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한없이 펼쳐지는 풀밭 위에 허공에 달려 있지 않다. 지평선의 저쪽에는 현대식 건물로 가득찬 도시가 있고 그 위에 있는 것은 허공이 아니라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의 손수건이 앞으로 건축될 수 있는 사람의 거소의 상상 공간에 있는 데 대하여 이 장막은 이미 지어져 있는 도시의 집들을 가리고 있다.

그림의 풀들이 신선하고 예리한 맛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은 동판의 날카로움과 붓의 유연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가. 그러나 풀도 조금 더 노란 빛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화에서의 흰 손수건이 상상으로나 실제에 있어서나 앞으로 지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것들을 암시하는 것이었다면, 여기에 지어야 할 것이 별로 없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미 지어있는 것은 가려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장막을 화폭으로 삼아 그려 볼 수 있는 상상의 조형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 의미를 갖는 상상의 발랄한 실험은 아니다.

“모자와 구두가 있는 바위 A Rock with the Hat and the Shoes” 에서, 누른빛의 풀밭과 구름 그리고 몽롱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바위가 거의 전 화면을 차지한다. 바위 위의 모자와 아래의 장화는 누가 벗어놓은 것인가. 아니면 바위가 모자를 쓰고 있고 구두도 신은 것인가. 바위 곁에는 시계와 같은 것이 장치되어 있다. 바위는 아마 시간의 지배 하에 있는 인간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인간은 깎아놓은 바위처럼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작품의 하나인가. 아니면 시간과 더불어, 나이와 더불어, 사람은 그러한 바위처럼 되어가는 것일까. “두 바위와 굴렁쇠 Two rocks with the Hoop”에서 크기나 생김의 정도가 다른 두 바위는 풀밭 위에 멈추어선 두 명의 사람, 어쩌면, 남녀일 것이다. 두 바위의 둔중함은 바위를 장식한 덩굴이나(이것도 시간과 더불어 시들 것이 틀림없지만) 작은 바위에 걸쳐 있는 의상으로 인하여 조금 가벼워졌다. 덩굴을 감아놓은 굴렁쇠는 아이들의 놀이의 가벼움을 연상시키지만, 지금 돌이 되어 있는 바위가 굴릴 수 있는 장난감은 아닌 것 같다. “굴렁쇠 Hoop”라는 작품에도 같은 장난감이 나오지만 그것은 저녁때의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 옆 계단으로 올라가버린 누군가가 놀이를 끝내고 놓아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두 바위…”에서 바위에 기대어 놓은 굴렁쇠도 놀이의 시작이나 계속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직은 덩굴의 장식이나 의상의 화려함이 나타내듯이 아름다운 것들이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바위 위의 바이올린 Violin on the Rock”은 제목대로 바위 위에 놓인 바이올린을 보여준다. 제목은 반석 위에 놓인, 그러니까, 영원히 지속될 바이올린, 즉 음악의 존재를 말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면의 실제에 있어서 바위의 엄청난 크기와 무게에 대조되는 바이올린의 존재는 극히 가냘픈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움을 표하는 것으로 보이는 덩굴 줄기의 가냘픔은 이것을 더 강조해준다.

바위와 악기의 병치는 다른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바위와 첼로 Cello with the Rock”에서 악기는 바위와 나란히 있다. (바위가 있는 들에는, 장막 뒤에 도시의 건물들이 있었듯이, 송전탑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악기는 바이올린이 아니라 첼로이다. 이것은 크기에 있어서나 그 음역의 무게에 있어서 조금 더 바위에 대비될 만하다. 이번의 유화에 그려진 또 하나의 악기도 첼로이다. “스카프가 있는 첼로 Cello with the Scarf” 에서 첼로에는 스카프가 씌워져 있다. 배경은 밤처럼 어둡고 안경이 놓여 있는 바위 주변만이 그윽하게 밝아 있을 뿐이다. 연주는 이미 끝난 것인가. 어떤 초현실주의의 그림에서도 그렇듯이 첼로나 바이올린은 때로 여자의 몸과 비슷한 형체를 가진 것으로 말하여진다. 스카프는 이러한 연상을 보강해준다. 그러나 첼로가 여인이라면, 여인이 발랄한 삶의 에너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하든 아니든 판화에서는 음악은 꽃과 새와 악보의 가벼움, 그리고 로코코 문양 같은 우아하게 휘감긴 바이올린의 목으로 대표되었었다. 그 음악과 어두운 성적 유혹의 표현으로서의 음악과의 차이는 삶과 상상력의 명암과 경중의 차이이다.

이번 전시회의 그림에 처음 등장하는 물건으로써 거울이 있다. 거울의 형체는 첼로와 유사하다. 그리고 한 작품에서 거울은 여인의 나체 하반신을 비친다.(“풀 위의 거울 Mirror on the Grass”)거울이나 악기나 다 같이 성적인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여기의 성은 어떤 것인가. 거울의 성은 봐여리즘(Voyeurism)의 성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현실의 성이라기보다는 기억이나 상상에 되비치어 돌아오는 어떤 것일 것이다. “테이블 위의 거울 Mirror on the Table” 은 거울의 정황을 설명해준다. 거울 속에서 촛불이 밝혀져 있고 그 저쪽으로 사다리가 있고 공중에 서있는 사다리 위로 달이 떠있다. 거울은 달에 오르는 계단이 되어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탁자 위에서 열쇠, 안경과 주사위와 시계가 놓여있다. 거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적 소유와 관찰과 운수와 시간을 확보한 연후에 가능하다. 탁자 앞에 보이는 공간에는 초현실적 상상의 공간이다.

“달과 사다리 Moon and Ladder”는 야경이다. 풀밭이 있고 어두운 숲이 있고 밤하늘이 있고 달이 있다. 이러한 야경의 일부가—특히 달이 장막에 잡혀있다. 여기의 사물들과 그 배치는 1978년의 판화, “나무와 손수건”과 흡사하다. 다만 전체의 분위기가 다르다. 그리고 장치로서 크게 다른 것은 나무 대신에 풀밭으로부터 사다리가 달을 향하여 뻗어있다는 것이다. 나무가 앞에서는 달을 환상처럼 끌어내려준데 대하여, 최근의 작품에서의, 덩굴가지와 붉은 의상이 걸쳐 있는 사다리는 달을 향하여 떠날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밤의 숲에서이건, 밝은 대낮의 공간에서이건, 이러한 회화적 명상을 통해서 암시되는 것은 궁극적인 초월이거나 조용한 내면에로의 명상적 침잠이다. 그 분위기에 있어서 황규백 화백과 볼테르는 전혀 다른 조(調, key)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야 하겠지만, 볼테르의 유명한 말에, 실천으로나 이론으로나 세사에 동분서주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황화백의 이번 전시에서 풀밭 위에 놓인 확돌을 모티프로한 것이 여러 편 있다. 여기의 풀밭은 열려있는 들판이라기보다는 암청색의 나무에 둘러 쌓여있는 정원으로 보인다. 확돌은 원래 실용적인 물건이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정원에 놓인 예술품이 되어 있다. 확돌에 고인 물에는, 저 홀로 또는 감상자의 눈 아래에서, 달과 하늘과 숲이 비친다. 지금은 꽃이 놓여있지만, 그 의자에 앉으면, 이것을 감상할 수 있다. 확돌에 물이 없을 때, 그 바닥에 시계, 그리고 가장자리에 우산이 놓여있다. 우산은 어쩌면 비 오는 날의 방황에서 사용했던 것일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시계가 있다. 그것이 현재이든 과거이든 방황과 소요의 동반자였던 우산은 덩굴의 줄기로 장식하여 기념할만하다.

이러한 정원의 경험을 단순히 안으로 접어드는 행위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을 통하여 바깥의 세계를 우리는 보다 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번의 전시작에서 단순하면서 조용한 감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위 A Rock”이다. 밝은 지평선의 끝으로 하늘까지 이어지는 풀밭 위에 계란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하나 놓여 있다. 섬세한 결로 보아 그것은 사람이 원시적인 수법으로 다듬어 놓을 것인 듯도 하고 우연히 거기에 놓인 것 같기도 하다. 자연물이되었든 인공물이 되었든, 펀펀한 들녘에서 눈을 끄는 조형물임에 틀림이 없다. 이 바위위에는 한가닥의 꽃가지가 놓여 있다. 사람은 세계의 형상들의 경이에 마주칠 때, 이를 기리는 표를 거기에 바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람이 바치는 찬미의 증표는 가냘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적절하다. 하늘과 땅과 풀과 나무 사이에서 사람의 존재는 얼마나 겸허해 마땅한 것인가.

굴렁쇠는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고, 그가 누구였든지 간에 굴렁쇠를 가지고 놀던 사람은 계단 위의 저쪽 저녁 불이 밝혀져 있는 실내에 돌아 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하루의 놀이가 끝난 다음의 행복한 휴식이 자리하여 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적어도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만족할만한 세계를 이룩한 노 예술가의 이야기의 일단의 마감을 표하는 것으로 적절하다. 노 예술가는 사람이 사는 세계의 지각과 상상적 구조를 생각하고 재현하고 다시 돌아와 그 인간적 의미를 명상적으로 되찾고 이를 동판화로 그리고 유화로 표현하였다. 세계와 삶은 지각되고 상상되고 현실적으로 구성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표현의 명증화가 없이는 참으로 참모습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작업이면서, 심각한,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의 굴렁쇠 놀이 같이 순진한 놀이이다.

위에 말한 것은 다시 한번 황규백 화백의 작품을 우화로, 하나의 서사로 읽은 것이다. 이러한 독법(讀法)은 작품의 감각적 직접성을 손상할 수 있다. 다시 돌아 가야할 것은 작품 자체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황화백의 매체는 판화에서 유화로 바뀐 것인데, 유화는 판화에 비하여 서사적 크기를 더하여 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에 따라서는 그의 동판화가 가지고 있는 명료함의 힘과 그것을 통하여 성취되는 사실적 정교함이 조금 줄어든 감이 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넓어진 공간과 유화물감의 상호삼투성으로 하여 이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것이 황화백의 동판화시기로부터의 서사적 맥락이다. 위에서의 나의 알레고리적 독법은 이러한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되풀이하여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이다. 황화백의 예술적 탐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서사적 내용을 떠나서도 앞으로도 그의 작품은 그 체험적 복합성을 더해갈 것이다.

     

Red Umbrella, 2004,Oil on Canvas,122x100cm

     

A Mirror on the Table, 2003, Oil on Canvas,122x102cm

     

Moon and Ladder, 2003, Oil on Canvas,122x102cm

     

Hoop, 2004, Oil on Canvas,122x102cm

     

Mail Boxes, 2001, Oil on Canvas,102x122cm

     

Gourd Dipper, 2001, Oil on Canvas,102x122cm

     

Violin on the Rock, 2003, Oil on Canvas,102x122cm

     

Ladder, 2003, Oil on Canvas,122x102cm

     

Cello with the Rock, 2004, Oil on Canvas,122x102cm

     

     

     

On the table 1977

     

잔디 위의 나무 1992

     

나비들 1991

     

Bird and musical no 1985

     

Black chair 1984

     

새, 알람시계 1984

     

Umbrella 1982

     

Three grinders 1980

     

A game 1976

     

White handkerchief 1973

     

문 / 1998 / 32.5 x 27.5

     

두 지붕 / 1991 / 22.5x20

     

다리 / 1990 / 22.5x20

     

꽃들 / 1991 / 22.5x20

     

바이올린과 버찌/ 1988 / 22.5x20

     

장미 / 1988 / 17.5x27.5

     

달과 꽃 / 1988 / 32.5x30

     

발레 / 1988 / 27.5x34

     

새와 코스모스 / 1988 / 27.4x34

     

나무와 양귀비 / 1988 / 22.5x20

     

찻잔과 바이올린 / 1988 / 30x32.5

     

모자 / 1988 / 22.5x20

     

편지 / 1988 / 22.5x20

     

나무와 네개의 의자 / 1988 / 32.5x30

     

담 / 1988 / 32.5x30

     

연주회 / 1988 / 27.5x34

     

음료수 / 1989 / 22.5x20

     

수박 / 1989 / 33.5x27.5

     

두개의 의자 / 1989 / 22.5x20

     

일기예보-N / 1978 / 34x30

     

잔디 위에 / 1977 / 33x27

     

작은 천막 / 1976 / 33x27

     

담/1990 /22.5x40

     

두개의 우산 / 1990 / 22.5x40

     

종이, 꽃, 돌 / 1988 / 27.5x33.5

     

손 / 1990

     

바이올린, 장미, 소파 / 1990

     

시트 위의 바이올린 / 1990

     

석류 / 1990

     

튜립과 가면 / 1989

     

연주회 / 1989

     

풀밭위에 두 장의 종이 / 1989

     

가면 / 1988

     

버찌(Ⅱ) / 1988

     

버찌 / 1988

     

나비채 / 1988

     

우편함 / 1988

     

골프(Ⅰ) / 1988

     

골프(Ⅱ) / 1988

     

꽃 / 1976

     

     

spool and pencil 1983

     

Two cushions 1987

     

황규백(黃圭伯)

현재 뉴욕에 살고 있으면서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판화가 황규백은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미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 관한 20년간의 활약상 즉 1968년부터 88년까지의 20년전은 이미 1989년 8월에 현대화랑에서 개최한 바 있고 그에 관한 화집으로 정리된 바 있다. 황규백은 1974년 8월 한화랑에서 개최한 「황규백판화전」으로 데뷔하여 그 이전의 작품 즉 1969년 또는 1973년 등 그의 대표작등을 함께 전시하였다. 그 다음은 1978년 5월 현대화랑에서 개최되었고 1982년 5월에는 선화랑에서, 85년 10월과 88년 6월에는 현대화랑에서, 그리고 89년 8월에는 "황규백판화 20년전"이 현대화랑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판화가 황규백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정감을 끌어내는 그러한 작품이다. 그것을 굳이 미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미의 세계의 실현"이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그에게는 있다. 그의 작품은 격정과 특수한 것의 표현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생활의 어느 구석구석에 다소곳이 있는 그러한 미의 세계를 찾아내서 그것을 아무 부담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자연형태를 재현하고 있기에 사실 또는 구상의 수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른바 자연주의자들이 재현하고 있는 사실과는 달리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하는 초현실적인 자연인 것이다.

<황규백 근작전>중에서 발췌 / 글 이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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