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D.958 - Alfred Brendel│낭만파 전기

리차드 강 2017. 8. 19. 05:18

Piano Sonata in C minor, D. 958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D.958

Frnaz Schubert (1797-1828)

2. Adagio

Alfred Brendel, piano

 

     

슈베르트 : 마지막 세개의 소나타

만년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들은 그가 평생을 몰두해왔던 장르이고, 1825-26년에 이미 또 다른 삼부작을 출판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소나타들은 <겨울 나그네> 이전의 슈베르트 음악에서는 그리 드러나지 않았던 특징들을 담고 있다.

안톤 쉰들러(베토벤의 전기 작가)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베토벤은 임종시 슈베르트의 최고 걸작 가곡들을 보고는 "슈베르트, 이 친구 내면에는 정말로 신성한 불꽃이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과 얼마 후 1827년 3월 19일 슈베르트는 임종을 앞둔 베토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간다. 며칠 후 그는 베토벤 장례 행렬에서 관솔불을 드는 일원으로 참여한다.

1828년 말 슈베르트도 세상을 떠난다.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몇개월을 앞두고 있을 때 피아노 소나타 3곡(D. 958, D. 959, D. 960) 을 완성했다. 병으로 고통받던 작곡가가 이 짧은 기간 동안 그의 전 작품 가운데 가장 심오한 걸작들을 썼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밖에도 피아노 3중주 B플랫 장조와 E플랫 장조, 피아노 2중주를 위한 놀라운 f단조 환상곡, 우아한 현악 5중주 C장조등 모두 이 시기에 나온 것들이다.

   

     

Piano Sonata in C minor, D. 958

1악장Allegro - 2악장Adagio - 3악장 Menuetto (Allegro) - 4악장 Allegro

이들 가운데 첫 곡인 이 곡 c단조 소나타의 첫 주제는 교회의 성가로부터 따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굴곡이 심한 선율과 리듬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점점 음악을 휩쓸며 처음의 그 고요함은 두번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고요한 분위기로 돌아가고자 애절하게 애쓰지만 허사로 끝난다. 미뉴엣은 서정적이지만 계속 그 흐름이 중단된다. 마지막 피날레 악장은 일종의 힘의 여행(tour de force)이다. 슈베르트 작품 가운데 가장 악마적이고 길다란 운동으로 타란텔라 리듬으로 되어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간주부(에피소드) 하나를 제외하면 이 악장의 성격은 급박하게 쫓기는 듯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1악장 Allegro c단조 3/4박자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 주제는 마치 베토벤풍으로 시작된다. 일찍부터 제5마디부터 동기를 사용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확보부를 두지 않고 하나의 경과 주제에 이르기까지 발전되어 간다. 이 경과가 16분음표의 반주에 실려 펼쳐져 가고 조바꿈을 되풀이하면서 Bb장조로 끝난다. 쉼표를 사이에 두고 부드럽게[ 노래되는 코랄풍의 제2주제가 Eb장조로 제시된다. 제1주제와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는 이 노래가 내성으로 확보된 후에 셋잇단음표 반주위에서 자유롭게 발전된다 갑자기 16분음표의 펼친음형이 e플랫단조로 나타난 경과적 성격을 더해 가지만, 각 박자의 첫부분에는 약간  슬픔을 가지고 있는 제2주제의 변주를 들을 수도 있다. 발전부는 두 주제의 소재 및 경가 주제가 사용되고 있으나, 전체는 계속 16분음표에 의해 통일되어 진행된다. 눈부실 정도의 조바꿈 속에 각 소재가 고음부에 또는 저음부에 나타나면서 전개가 진행되면 오른손 성부가 큰 파옇의 화성적 스케일에 이른다. 음량을 낮춘 소재가 저음역에서 조용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제1주제의 첫부분 동기가 준비되어 크레센도하면서 재현부에 이른다. 재현부는 경과 주제를 생략했을 뿐이며, 거의 원래 그대로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제1주제는 으뜸조로 돌아오며, 제2주제는 같은 으뜸음장조인 C장조를 취하고 있다. 두 주제의 재현 후에는 제시부를 완전히  답습하고 있으며, 1마디의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두고 재현부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경과 주제를 사용한 코다로 악장을 끝맺고 있다.

 

2악장 Adagio Ab장조 2/4박자

이 악장의 조성 선택도 베토벤의 '운명'이나 "비창 소나타"와 같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슈베르트만의 느린 악장으로 대단히 아름다운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3부형식으로 구성되며 주제가 나타날 때마다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진다. 4성체의 소프라노에 아름답고 명상적인 노래가 조용하게 연주되기 시작한다. 이 주제의 발전 가운데 레가토의 반주 음혀을 가진 부주제가 나타나 조표를 사용하지 않고 자유로운 조바꿈과 그 울림을 주체로 하는 중간부가 된다. 조바꿈을 되풀이하여 Ab장조 주제 부분을 유도한다. 이 제 3부는 셋잇단음표로 움직이는 저음부위에 거의 재현적으로 첫부분 주제가 노래되며 진행된다. 이후에 셋잇단음표를 중심으로 발전부가 계속되며, 마지막에 다시 한번 주제부가 돌아와서 코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리트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느낌을 갖는다.

 

3악장 Menuetto (Allegro) C단조 3/4박자

레가토의 반주에 실려 소박한 선율이 옥타브로 흐르듯이 연주된다. 중간부에서 도약 진행가 두터운 화음이 서로 나타나 전개적인 고조를 보인다. 후반에서는 왼손에 주제소재가 다시 등장한다. 오른손은 부드러운 8분음표의 대선율을 조용하게 연주한다. 게네랄파우제를 사이에 두고 3번 반복되지만, 종지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오른손의 8분음표가 펼침화음으로 변화되고 있다. 트리오는 게네랄파우제 후에 Ab장조로 시작된다. 미뉴에트 주부보다 차라리 춤곡적이며, 제2,3박자에 스타카토 화음의 반주를 넣어 경쾌하며 친근감있는 주제로 시작된다. 중간부는 주제소재를 양손에 분배한 전개로 전반이 Eb장조, 후반이 e플랫단조로 되어 있다. 4마디의 조바꿈 악구를 지나 제2부가 복귀하였다. 원칙대로 미뉴에트에 다 카포되어 악장은 끝맺는다.

 

4악장 Allegro c단조 6/8박자

모두 717마디에 이르는 아주 긴 피날레로 마지막 악장에 번민하던 슈베르트의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다. 형식은 론더적이지만 제1쿠플레에 상당하는 부분에 새로운 주제를 두지 않고 제1,2주제의 변형을 사용하여 그것을 철저히 전개시키고 있는 점에서 소나타풍 론도로 되어있다. 제1주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8번 ' 작품 31-3의 피날레와 비슷한 음으로 시작한다. 수차레에 걸쳐 조바꿈되어 집요하게 되풀이되고 난 뒤에 셋잇단음표 음게의 경과루를 지나 Db장조로 끝맺는다. 게네랄파우제를 한마디 두고 이명동음적 조성인 c#단조의 제2주제부(B)가 나타난다. 6/8박자의 경쾌한 스타카토 리듬이 반주를 담당한다. 후반에서는 이 소재가 바뀌어 발전한다. 각 부분을 명시하는 듯한 전체 휴지부가 놓이고 발전부(C)가 B장조로 나타난다. 약한 레가토로 셋잇단음표의 도입 4마디를 지나 아름다운 노래가 제3주제적으로 제시되는데. 이것은 제2주제의 변주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듯이 제1주제 소재도 곁들여 큰 발전부를 만들어 간다. 제429마디 이후는 거의 형식대로의 제시부(A+B)를 재현하고있다.

     

Alfred Brendel

브렌델의 레퍼토리는 다른 연주가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좁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곡의 해석과 성실한 연주로 항상 최고의 음반을 남기고 있다. 하이든, 슈만, 브람스, 모차르트, 베토벤이 그의 주요 레퍼토리이며 특히 베토벤의 연주에 브렌델의 피아니즘은 절정에 이른다. 그의 연주스타일을 보면 대기만성형의 성격에서 잘 나타나듯 화려하거나 특별한 개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처음 음반을 접하면 아무런 특징이 없는 그의 연주에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브렌델의 연주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만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그의 연주를 두고 "브렌델의 음은 색채감이 약한 대신 농담(農談)이 매우 풍부해 수묵화의 높은 경지를 느끼게 한다" 말했다.

     

위대한 약속

슈베르트는 항상 진지했고 스스로에 대한 째찍질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대한 예술가였다.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던 슈베르트는 그 동안의 작품에 대해 가차없는 자아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베토벤과 비교해서, 자기의 작품들은 즉흥적이고 표피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하여 그는 베토벤의 대위법을 다시 공부하여, 베토벤이 주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감동을 담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아니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것은 '위대한 약속' 이었다.

그리하여 남긴 곡이 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되는 마지막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이다.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 앞에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갈망을 모두 담아서 열정적으로 써낸 작품들, 그 세 곡은 모두 그가 죽은 해인 1828년에 쓰여졌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의식은 더욱 또렸 해지고 죽음에 다가 갈수록 예술가의 영감은 더욱 불타 오르는 것인가?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쓴 것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이 세 곡은 '슈베르트 최후의 3대 소나타'로 불리는 대곡들이며, 모두 슈베르트가 죽고 난 이후에 출판된 유작들이다. 그것들은 제19번 C단조 D.958, 제20번 A장조 D.959, 제21번 B플랫장조 D.960이다.

특 히 마지막 곡인 피아노 소나타 B플랫장조 21번 D.960은 슈베르트의 곡 중에서도 최고의 대작이란 평가를 듣는다. 베토벤과 같이 뛰어나고 깊이 있는 피아노 소나타를 쓰겠다던 슈베르트가 19번과 20번을 그가 목표하던 베토벤적인 곡을 탄생시켰다면, 마지막 21번은 '슈베르트적인 피아노 곡' 이라는 완벽하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룬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F.Schubert)의 생애

1797 1월31일 비엔나에서 태어남
1808 비엔나 왕실 교회 합창단원
1810 살리에리(Antonio Salieri)를 사사함
1814  <실 잦는 그레트헨>작곡
1815 학교 교사, 많은 양의 작품-특히가곡작곡, <마왕>발표
1816 교사 사직, 그의 음악을 공연하기 위하여 절찬한 친구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는 '슈베르티아데'를 처음으로 조직
1818 에스데르하지 백작 자녀들의 음악선생
1821 비엔나에서 명성이 점차 높아지고 친구들의 모임도 확대됨, <마왕>출판
1822 <방랑자환상곡>, <미완성교향곡>
1823 지병악화, <아르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1824 8중주, <죽음과 소녀>4중주, a단조 4중주
1825 '슈베르티아데' 활동 재개, <대교향곡>C장조
1827 <겨울나그네>, 베토벤 장례식 준비위원
1828 3개의 소나타, 현악5중주, 11월 19일 비엔나에서 생을 마침

프란츠슈베르트는 1797년 빈에서 초등학교 교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대단치 않은 수입으로 많은 식구가 살자니 경제적으로는 늘 궁핍했지만 맏형이 피아노를 치고 아버지와 둘째 아들이 바이올린을 했으므로 가족이 어울려 실내악을 연주하는 등 음악적 환경은 괜찮은 편이었다. 9세 때부터 하모니와 대위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11세때 빈 궁정 소년합창단에 들어가 보이소프라노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슈베르트는 작곡기법을 발전시키는 충분한 기회를 갖게 된다. 그는 당시 합창단장이었던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에게서 음악이론을 배웠고, 학교 오케스트라를 위해 최초의 교향곡(1813)을 작곡했다.

 

최초의 걸작들..

1812년 변성기가 오자 슈베르트는 학교를 떠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생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1814년 그는 아버지의 보조 선생이 되었고, 같은 해에 그의 F장조 미사곡이 빈에서 초연되었다. 이때 소프라노 솔로였던 Therese Grob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해에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슈베르트의 진정한 첫 번째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Gretchen at the Spinning-wheel'을 작곡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슈베르트는 엄청난 양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1915년 한해에만 144개의 가곡, 1개의 교향곡, 2개의 미사곡과 기타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빈의 음악써클-슈베르티아데

1816년 보다 좋은 자리로 선생직을 신청했으나 거절 됐고, 슈베르트는 선생직업을 포기하고 작곡가로서 자유로운 보헤미안 생활방식대로 살기로 결정했다. 이 때부터 슈베르트는 공식적인 지위는 갖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곡을 만들었다. 그는 시인 Mayrhofer와 퇴직한 궁정의 오페라 바리톤 가수 포글 등과 같은 예술계의 친구들과 폭넓은 써클활동을 했다. 이들은 빈의 커피하우스와 집 등에서 정기적으로 음악행사를 했는데 이 모임을 '슈베르티아데'라 불렀다.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한 이 모임에서 포글이 슈베르트의 많은 가곡들을 처음으로 불러 발표했고 실내악 음악들도 연주되었다. 후세에까지도 명가곡 중의 명가곡으로 남은 연가곡 '겨울나그네'도 그 중의 하나이다.

1818년경 빈은 로시니의 오페라로 떠들썩했고 슈베르트도 로시니에게 고무되어 2개의 서곡을 작곡하여 1818년 3원에 콘서트에서 초연되었다. 이것은 슈 베르트 최초의 대중공연이었다. 그 해에 슈베르트는 요한 에스테를하지공작의 두 딸들을 여름동안 가르쳤다. 1819년 슈베르트는 포글과 북부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유명한 피아노 5중주곡 '숭어'를 작곡했다. 곧이어 그는 오라토리오 Lazarus, Wanderer Fantasy, Quartet Movement C 단조를 작곡했다.

1821년 자선콘서트로 슈베르트는 좀 더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시기에 그의 써클 친구들에게 많은 변화가 생기고 몇몇은 빈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새로운 친구중에는 화가 인 쿠펠바이저와 슈빈트도 있었다. 슈베르트는 그 해에 7번째 교향곡을 구상했으나 오케스트레이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822년 유명한 8번째 교향곡 B단조를 쓰기 시작했으나 2개의 악장만을 완성시켜 '미완성교향곡'이라고 부른다.

 

성병에 걸린 슈베르트

1822년 말 슈베르트는 매독에 감염되었다. 매춘에 의해 전염되었다고 하는데 상대가 남성이었는지 여성이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1823년 슈베르트는 빈의 종합병원에 수주일 입원했었다. 입원중에 그는 유명한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The Fair Maid of the Mill)'을 완성시켰는데 이 작품은 당시의 슈베르트의 심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소년이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사랑하지만 결국 그 아가씨가 소년을 거절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소년은 남성적인 시냇물에서 위안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은 자살한다.

1824년 슈베르트는 다시 에스테르하지공작 집에 머무는데 이번에는 캐롤라인 에스테르하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스테르하지는 슈베르트가 가난하며 사회적 지위도 낮고, 아마도 성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캐롤라인의 적합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슈베르트는 A 단조 현악4중주와 피아노 2중주를 위한 Grand Duo를 작곡했다. 다음 해에 9번째 교향곡 'Great'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19세기 초기의 교향곡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었다.

 

생애 마지막 2년

1827년과 1828년에 슈베르트는 아주 심오하고 훌륭한 걸작들을 작곡했다. 최고의 작품 연가곡  '겨울나그네(Dio Winterreise)'는 1827년 작곡됐다. 빌헬름 뮐러의 24개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연인에게 버림받은 젊은 청년이 고독한 겨울의 황무지를 방황한다는 이야기를 음울하고 을씨년스럽게 표현한 작품이다. 늙고 가난한 오르간연주자를 묘사한 마지막 노래 '내 노래애도 오르간 반주를 하실껀가요?'는 제쳐놓더라도, 이 작품 전반에는 '비애를 처리할 방법이나 장소를 이 세상에서는 찾지 못하고 그대로 영원히 고통을 등에 업고가야 한다'는 사나이의 운명이 처절하게 담겨져 있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개성을 극도로 잘 표현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시기에 다른 작품으로는 2개의 피아노 3중주, C장조 현악 5중주, 3개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 등이 있다.

1827년,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횃불을 들고 장례마차를 선도하는 36명의 대열속에 끼었다는 얘기도 있다. 1828년 3월 대중 콘서트는 성공적이었지만,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베토벤이 죽은지 1년 후인 그 해 11월 슈베르트는 31세로 짧은 인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빈 중앙묘지의 베토벤 묘 바로 옆에 묻혔다.

 

슈베르트의 성격

슈베르트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성격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그만의 성격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성격으로는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을 들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한 아버지로 인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줍움을 많이 타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사교계에서도 무척이나 조용했고 이런 면들이 그가 사교계를 떠나 음악모임만으로만 침잠하게 만든다. 슈베르트는 이런 내성적인 성격으로 독서와 음악을 통해 많은 착상들을 떠올렸고, 이런 착상이 떠오를 때마다 사색하곤 했다. 슈베르트가 매독에 걸린 이후, 슈베르트의 성격을 더욱더 내성적이고 어두워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의 후기 작품들(D.800이후)를 보면 특유의 우울함이 느껴진다.

 

슈베르트의 음악

슈베르트의 음악은 다른 위대한 작곡가의 것과는 다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특히 바그너, 슈베르트는 그 자신의 천재성을 알지 못하게 보여준다. 그가 모든 작품들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그의 인생의 거의 마지막 해였다.

그가 젊었을 때, 그만의 방식으로 곡을 쓰기 위해서 유명한 작곡가와 기도문에 많이 귀를 기울였다. 그의 초기 심포니는 베토벤의 진실한 정신으로 쓰여있다. 유명한 다섯 번째 심포니를 예로 들면, 이 곡에는 모차르트의 전형적인 기교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슈베르트가 그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곡을 쓰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심포니에서 많은 이교도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슈베르트의 여덟 번째의 심포니는 그의 자신의 뛰어난 스타일로 쓰여졌고 그의 교향곡을 쓰는 능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곡을 쓰는 방법은 수베르트의 음악을 통털어서도 볼 수가 없다. 그는 고전주의의 언어로써, 낭만주의 음악을 작곡했다. 말년의 음악은 자주 우울한 기분이 풍기는 반면에, 슈베르트의 젊었을 때의 음악은 매우 행복한 분위기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곡들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 마지막 부분에는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는 슈베르트의 인생에 있어서의 마지막 5년 동안의 생각들을 반영한다. 당시에 그는 지독한 성병으로 안해 그의 힘의 많은 부분을 빼앗았다. 슈베르트는 그의 죽음 뒤에 좋은 것을 만난다고 믿었다. 이는 그의 음악 속에서 많이 보여진다고 생각된다.슈베르트는 그의 작품들을 오케스트라나 전문적인 음악가에 의해 연주되는 음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피아노 음악, 현악4중주 그리고 물론 독일어로 "Lieder"인 그의 수많은 곡을 썼다.  그가 죽었을 때 슈베르트는 그렇게나이가 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다음세대를 위한 수많은 보물들을 기록했다. 그는 곧 그가 죽을 것을 알았지만, 그가 작곡했었던 모든 것을 기록하기를 원했다. 모차르트처럼 슈베르트는 건반도 없이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그의 멜로디와 그가 적어놓기 귀찮게 생각했던 생각들을 모두 개변화하였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의 작품의 상당한 부분을 남겨둔 슈베르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① 작품경향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였고, 또 평생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그곳에서 음악활동을 하였으므로 베토벤과 비교해 보면 슈베르트의 작풍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베토벤은 음악을 계시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민(選民)으로 자처하였다, 이것은 당시 독일유식계급의 눈에 비친 프랑스혁명이나 나폴레옹 초기 활동의 지도이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와 같은 선민의식을 갖지 않았고, 스스로 즐기며 타인도 즐겁게 하려고 작곡을 하였다. 이 즐거움은 메테르니히의 보수정책에 의하여 언동에 제약을 받아 현실에서 눈을 돌려 예술에서 도피장소를 찾으려는 오스트리아의 유식계급과 거기에 안주하려는 서민계급의 즐거움으로 다분히 감상성(感傷性), 안이성, 비논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의 하나인 비구축성(非構築性)이 유래된다. 그의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소나타 등이 형식적으로는 소나타이기는 하나 실제는 아르다운 선율의 연계로 되어 있음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그 이전의 빈고전파의 작곡가들과 같이 오페라, 실내악, 피아노곡, 교회음악, 가곡 등, 협주곡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걸쳐 있고 작품량은 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극히 많은 셈이다. 오토 에리히 도이츠의 연대순으로 정리된 작품번호(D.로 약기)에 따르면 작품수는 998개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약 633곡의 가곡이며, 이전의 고전파시대에는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예술부문이 슈베르트에 의하여 아름다운 선율과 색채에 넘치는 화성에 힘입어 비로소 독립된 주요한 음악의 한 부문으로 취급된 점이다. 그는 교향곡을 비롯한 기악곡분야에서도 풍부한 선율과 아름다운 화음에 의하여 고전적인 단정함과 낭만적인 서정성이 감도는 많은 적품을 창출하였다.

 

② 작품목록

슈베르트의 작품은 작품번호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주 적고, 그것도 연대순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에는 O.E.도이치가 전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일련번호인 도이치번호 사용(또는 작품번호 병용)이 일반화 되어있다. 슈베르트는 민요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던 가곡을 예술가곡 수준까지 높였다. 화성의 아름다운 변화, 반주피아노의 자율성 등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주 <가곡의 왕>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오페라, 미사곡,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곡 등에도 발휘되어 있어 모두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③ 피아노 음악의 특징

슈베르트가 19세기 리트의 창시자로 유명한 것은 당연한데, 그는 또한 작곡가로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보여주는 피아노 곡도 많이 썼다. 그는 최소한 자기 영감의 일부를 함축적인 캐릭터 피스(Character piece)로 구체화했는데, 이들은 마치 즉석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로부터 만들어진 듯한 즉흥연주 풍의 느낌을 준다. 슈베르트는 그의 사망연도인 1828년에 두 셋트의 <즉흥곡(Impromptus)>을 썼는데, 이런 타이틀은 그 당시로 볼 때는 최근의 창안이었다. <즉흥곡>은 빼어난 음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짧고, 아이디어는 간결하고 선명하며, 또한 불필요하게 많은 음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작곡가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Impromptus란 타이틀 자체가 즉흥연주를 뜻하며, 슈베르트는 이런 느낌을 이 곡들에 불어넣었다. 그러나 <즉흥곡>은 세련된 예술형식이다. 슈베르트는 항상 피아노소나타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쓴 많은 수의 소나타는 미완성으로, 즉 단편적이다. 완성, 미완성 소나타를 전부 합치면 21곡이 된다. 슈베르트는 마음만 먹었더라면 베토벤소나타에서 사용된 패턴을 따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슈베르트 작품에는 베토벤 곡에서와 같은 모티프적 구성이 없으며, 그는 형식을 가지고 시험하려 하지도 않는다. 슈베르트는 거의 전적으로 선율-특히 그의 가곡에 적절한 표현성을 부여한 그런 종류의 선율의 관점에서 생각했다. 이런 선율의 대부분이 긴 전개과정에 적절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맺음말

영원한 방랑자 슈베르트의 생애도 참으로 많은 아쉬움과 미련 같은 것을 남겨둔 채 끝나 버린 삶이었다. 그가 살다간 31년의 생애는 그 넘쳐 나는 천재성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안타깝고 허전할 뿐이다. 낭만주의 음악의 문을 열어 젖힌 천성의 로맨티스트 슈베르트가 최소한 10년만 더 살았더라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사는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의 유산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간절함이 가시지 않는 작곡가이다. 자신의 천재성과 음악적 능력을 당대에 올바르게 평가 받지 못하고, 살아 생전에 항상 가난과 궁핍 가운데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슈베르트는 오직 음악과 함께, 음악만을 위하여 살다간 순수한 예술인이었다. 슈베르트의 개성은 음악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음악에는 아주 유쾌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는가 하면 음울하고 냉엄한 면도 있다. 특히 만년의 작품에는 즐겁고 편한 음악에서 조차 자신의 병과 인생의 좌절을 암시하는 슬픔과 고독이 숨어 있다. 슈베르트는 그 시대의 훌륭한 심포니스트로서 베토벤과 한께 예술계의 거장임에 틀림없다.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장르에서 그의 음악은 탁월했고, 아마도 가장 위대한 가곡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그는 고전주의 형식으로 대폭 확장 시켰고 19세기 말 까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의 서정적 표현일 것이다. 슈베르트는 여러 면에서 진정한 최초의 낭만파였다. 슈베르트는 낭만적 시대의 예술가다운 생애를 보냈고, 그 음악은 극히 낭만적인 내심의 정감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뒷날의 슈만이나 쇼팽, 리스트 등과 같은 뜻에서의 낭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고전파와 낭만파의 사이에 가로놓인 골짜기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요, 맑은 시냇물의 흐름이었다. 그의 생가이자 기념관은 찬미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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