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칼리아 c단조 (Passacaglia in C minor, BWV 582) 작곡 연도: 1716년 ~ 1723년 경 작곡 장소: 바이마르, 쾨텐 출판/판본: 18세기 전반의 필사본이 서부 베를린 프로이센 문화재 국립도서관에 보존됨. 헌정, 계기: 파사칼리아는 반복되는 저음 주제에 의한 변주곡 형식이며 전곡은 푸가 부분이 함께 포함됨. 푸가 부분이 독립적이기보다는 파사칼리아 부분과 유기적으로 구성됨.
악장 구성 Passacaglia 첫 부분의 주제는 페달의 솔로로 제시되며 이어서 이 주제에 의한 20마디의 변주가 진행됨. 주제는 단성부로 제시되며 8마디로 구성됨. 전곡은 제1부분(제1~제10변주) - 제2부분(제11~제15변주) - 제3부분(제16~제20변주)로 구성됨. 제1변주와 제2변주는 싱커페이션 리듬으로 구성됨. 제3변주는 8분음표를 중심으로 진행함. 제4변주와 제5변주는 리듬이 서로 연관되었으며 제5변주는 처음 제시된 저음 주제를 변형함. 제6변주는 상3성에 16분음표가 등장하며 제10변주까지 이어짐. 중간부의 제11변주와 제12변주는 저음 주제가 소프라노에서 등장함. 제13변주에서는 주제가 알토에서 나타남. 제14변주에서는 테너, 제15변주에서는 베이스가 주제를 제시함. 제3부의 16변주부터는 다시 처음의 저음 주제가 페달에서 재현됨. Fugue 4성부로 구성된 푸가 형식으로, 푸가 주제는 파사칼리아 주제의 건반에서 2개의 고정 대위 악구와 함께 등장함. 이러한 형식은 "G단조 대푸가 BWV 542"와도 비슷함. 푸가 부분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E단조 으뜸화음에서 나폴리6화음이 등장하면서 중단됨. 이후 C단조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감.
1. 개설 파사칼리아란 주로 저음으로 반복되는 오스티나토 주제에 의거한 변주곡의 일종이다. 바흐의 경우 이 형식으로는 이 곡이 유일한데, 이는 그의 시대에 파사칼리아는 이미 낡은 형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마치 튼튼한 토대 위에 구성된 거대하고 장려한 건축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흔들리지 않는 질서와 표현의 위대함은 마음 깊이 와 닿는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전곡은 파사칼리아 부분과 푸가 부분으로 되어 있어 '파사칼리아와 푸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양자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로 거대한 통일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곡이 원래는 페달이 없는 쳄발로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설은 현재 부정되고 있다. 이 유명한 걸작에는 후대의 편곡도 많다. 이를테면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와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 1899-)는 각각 관현악으로, 헤르만 켈러(Hermann Keller, 1885-1967)는 2대의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바 있다 2. 곡해설 북스테후데나 파헬벨 등 바흐의 선배들은 파사칼리아와 샤콘느를 거의 같은 뜻으로 취급하고 있으나 바흐는 이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BWV 1004)의 샤콘느와 이 곡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곡을 쓸 당시 바흐 역시 북스테후데나 파헬벨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지만 여러 면에서 두 선배를 능가하는 실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곡의 서두에 나타나는 주제는 페달의 솔로로 연주되고 이에 이어 이 주제에 의거한 20개의 변주가 구성되어 진다. 주제를 단성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신선하며, 8마디의 주제 역시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의 주제는 반복되는 8마디마다 변주를 뒤쫓아가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크게 3개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즉 상성부에서 주제가 두어진 곳을 중간부로 하는 잡고 8마디씩 단위에 의한 변주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제1부분(변주1-변주10, 주제는 저성부) *제2부분(변주11-변주15, 주제는 상성부) *제3부분(변주16-변주20, 주제는 저성부) 제1부분에서 변주1, 2가 동일 서법을 취하고 그것과는 다른 변주 3을 거쳐 변주 4, 5 에 이르러 다시 앞에서와는 다른 형태에 의한 동일 서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법적으로는 2-1-2로 나누어 변주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취급은 파사칼리아 전체에 대해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많으며 전체는 수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질서에 의해 지배된다. 제1변주와 제2변주는 싱코페이션 리듬에 공통점이 있으며, 8분음표의 제3변주를 끼고 제4변주와 제5변주도 상호 리듬적으로 관련이 있다. 제5변주에는 저음의 주제를 약간 변형했고 제6변주부터는 상3성에는 16분음표의 움직임이 나타타서 제10변주까지 점차 고조되어 간다. 제9변주에서도 주제는 리듬적으로 수식된다. 제11변주도 시작되는 중간부부터 전곡의 클라이막스에 달하고 제11 및 제12변주에서는 지금까지 항상 저음에 두어졌던 주제가 소프라노로 옮겨져 하성부의 음계적인 패시지 위에 자랑스럽게 승리를 고한다. 제13변주에서는 장식된 주제가 알토에 나타나고, 제14변주에서는 테너에, 제15변주에서는 베이스에 주제가 새로운 모습으로 연주된다. 이 13변주에서부터 15변주까지는 주제가 1성씩 하강하고 전체의 성부도 3성-2성-1성으로 감소해 간다. 제16변주에서는 주제의 원형이 압축된 형태로 페달에 재현되면서 제3부분으로 들어간다. 정치한 5성부로 씌여진 제20변주에 이르면 파사칼리아의 힘찬 종지를 수반하면서 마무리된다. 뒤이어 4성부의 푸가가 이어지는데, 그 주제는 파사칼리아의 주제의 전반에서 항상 2개의 고정적인 대위악구를 수반하고 나타난다. 이 점에서 Passacaglia and Fugue for organ in C minor, BWV582 북스테후데를 비롯하여 바흐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오르간 악파의 작곡가들은 많은 파사칼리아를 작곡하고 연주하였으나, 바흐는 '파사칼리아' 형식으로 단 하나의 작품만을 남겼다. 단 한 곡이지만 선배들의 파사칼리아를 훨씬 앞지르는 것으로 웅대한 스케일과 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파사칼리아'나 '샤콘느'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르는 작품이 역시 바흐의 '샤콘느'와 이 곡이다. 1716∼1717년 무렵인 바이마르 후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원래 페달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곡이었는데 뒤에 바흐 자신에 의해 오르간용으로 편곡되었다고 한다. 파사칼리아 주제의 전반부는 루이 14세 시대에 파리에서 활동하였던 프랑스의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레종(Andre' Raison)의 (1688)의 주제에서 취했다. 곡 첫머리에 오르간의 페달을 사용하여 고집저음의 음형을 먼저 들려주며, 8마디의 고집저음이 20번 반복되는 동안 윗 성부의 음악은 점차적으로 복잡성을 더해 간다. 변주는 5개씩 네 부분, 또는 세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제1부분 주제, 제1∼제12변주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긴장과 흥분으로 인해 하나로 묶일 수 있다. 제6변주에 이르기까지 리듬의 점강법이 사용되면서, 리듬은 16분음표로 최종 분할되며 지속적인 흐름을 확립한다. 제1과 제2변주는 선율이 점8분음표를 연주하는 동일 리듬의 연속이기는 하나 둘의 화성 관계는 전혀 달라, 선율적으로 제2변주는 제1의 계속으로 점차로 하행하고 있다. 제3변주에서는 한결같이 8분음표의 리듬이 사용되었고 제4변주에서는 이미 2개의 16분음표가 1개의 8분음표와 번갈아 나오고 있다. 이와 똑같은 리듬은 제5변주까지 계속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페달도 16분음표로 움직이고 있고 또한 어느 것이나 지금까지와 같이 독립적이 아니라 현저하게 고조되는 흐름 안에서 비약하고 있다. 제6변주에서는 새로운 율동적인 고조를 나타내어 16분음표의 움직임만으로 일관하는데, 이 변주에서는 한 성부만으로 이 새로운 리듬을 연주하며 이어 제7변주에서는 두 성부로, 제8변주에서는 세 성부로 모두가 끊이지 않고 16분음표의 음형으로 연주된다. 다음의 세 변주에서도 계속 복잡성을 더해가는데, 제9변주는 3도로 비약하는 새로운 정력적인 동기를 제시하여 화려하게 움직이면서, 이에 페달이 가세한다. 제10변주에서는 화음 위에 16분음표의 패시지가 연주되어 리듬의 정점을 이루는 동시에 강한 음정이 사용되어 최고조를 이룬다. 계속 고조되던 같은 리듬의 반복이, 전곡의 반이 되는 제11변주에 이르러 성격을 바꾸고 고집저음이 가장 높은 성부에서 울린다. 이에 지금까지 계속되던 16분음표의 움직임은 저음에 나타나 반주로 끼어들고 가장 화려한 제12변주로 이어져, 고집저음으로부터 해방된 페달이 윗성부를 모방하여 바쁘게 움직인다.
제2부분 제13∼제15변주 제13∼15 변주는 페달 없이 연주되면서 점차적으로 음악이 단순해지며, 마치 재도약을 위해 잠시 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13변주에서는 주제가 다소 장식되어 중성에 나타나고, 제14와 제15변주는 부드러운 분산화음으로 연주되며 분산화음의 가장 낮은 음이 주제의 선율을 만들고 있다.
제3부분 제16∼제20변주 다시 고집저음이 페달로 연주되면서 절정을 향해 몰아간다. 제16변주에서는 고조를 재촉하는 듯 마지막 8분음표의 화음이 강하게 연주된다. 제17변주는 빠른 16분음표의 셋잇단음표로 격렬하게 연주되고, 이 음형은 정열적인 마지막 변주를 위해 규칙적인 16분음표로 늦추어지며 제18, 제19, 제20변주에서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러한 변주곡의 그룹은 크게 보아 '황금율' 이 큰 규모로 형성된 대칭형으로 볼수 있다. 주제는 모두 21번 나타나며, 가장 큰 제1부분에서는 13번, 제2, 제3부분에서는 각각 3번과 5번 나온다. 길이에 있어 제2부분과 제3부분의 비율은 제3부분과 제2+제3부분의 비율과 같다. - 즉 3:5 ≒ 5:8. 또한 제2+제3부분과 제1부분과의 비율은 제1부분과 전체와의 비율과 같다. - 8:13 ≒ 13:21. 고집저음은 계속 반복되기는 하지만 항상 같은 형태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율변주와 같이 변화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푸가는 4성으로, 파사칼리아의 8마디의 고집저음 중에서 첫 4마디를 주제로 하고있다. 여기에서는 주제가 나오면서 바로 대주제가 등장하고, 응답이 시작되는 마디에서는 16분음표로 빠르게 움직이는 또 하나의 주제가 나와서 2중 푸가를 이룬다. 전곡에 걸쳐 오르간의 기교를 극도로 발휘하였고 이와 함께 대위법적인 다채로운 기교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곡의 구성감은 음악이 도달할 수 있었던 하나의 극한의 세계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바흐가 파사칼리아를 단 한 작품만 쓴 데 대해서는 당시 파사칼리아가 낡은 형식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바흐가 이 작품에서 파사칼리아의 모든 가능성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 작품을 대할 때는 마치 견고한 토대 위에 거대하고 장려한 건축물이 구성되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바흐의 심오한 연구의 결과와 '음악적 건축가' 로서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칼 리히터,Karl Richter (October 15, 1926 – February 15, 1981) 독일 태생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쳄발리스트,지휘자. 칼 리히터는 당대 초일류급의 바흐 지휘자였으며,천재적인 오르가니스트 및 쳄발로 주자였다. 그는 1926년 10월 15일 독일의 작센의 프라우엔(Plauen)에서 태어났다. 그의 일족은 대대로 훌륭한 오르가니스트들을 배출한 집안이었다. 그의 부친은 지방의 목사였는데 그가 어렸을 때 별세했으며,이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 칼의 음악 공부를 위하여 프라이부르크로 이사했다. 1936년에 드레스덴의 십자가 신학교(Dresdner Kreuzchor)에 들어갔으며,동시에 이 학교의 십자가 성가대의 단원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종교 음악에 친숙해지기 시작했으며,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공부하였다. 1946년 라이프치히 국립음악대학교에 입학하여 당대 오르간의 대가였으며,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였던 카를 슈트라우베(Carl Straube),오르간 주자와 합창 지휘자로서 바흐의 권위자였던 루돌프 마우에르스베르거(Rudolf Mauersberger),오르가니스트이자 합창 지휘자였으며 뒤에 슈트라우베의 후계자로서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에 취임한 귄터 라민(Günther Ramin) 등의 당대 유명한 음악가들을 사사했다. 여기에서의 공부가 그에게 종교음악에 대한 학식을 깊게 했으며,바흐에 대한 조예를 심화시켰다. 1947년부터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 주자를 맡았고,1949년에는 교회음악을 위한 국가시험에 합격함으로써 토마스 교회의 정식 오르간 주자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5년부터 시작된 안스바하의 바흐 주간 음악제에도 매년 참가하여 지휘자,오르가니스트,쳄발로 주자로서 활약했고,이후 음악감독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칼 리히터는 1951년 라이프찌히를 떠나 서독의 뮌헨으로 옮겨 성 마르코 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고,동시에 뮌헨 고등음악학교 오르간과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3년에는 정식으로 교수 임명을 받았다. 그리고 1956년에는 이 학교의 오르간교수로 취임하였는데,이 무렵부터 오르간 주자로서의 리히터의 명성이 서방 사회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연주 활동도 더욱 활발해졌다. 당시 1956년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있던 귄터 라민이 별세하자 그 후임으로 초빙되었으나,당시 동독의 정치사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뮌헨의 일이 다망한 때문도 있어서 취임하지 않았다.
칼 리히터는 1951년 자신이 의도하던 바흐 연주의 실현을 위해,바흐의 음악에서는 합창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견지에서 단원을 널리 공모하여 뮌헨 바흐 합창단을 창단하여 그 지휘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 합창단은 독일에서도 바흐를 노래하는 제1급의 단체로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리히터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바흐 합창단을 설립한 동일한 의도로 관현악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는데,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뮌헨 필하모니,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세 오케스트라에서 능력 있는 훌륭한 연주가를 모아 1955년 뮌헨 바흐 관현악단을 결성하였다. 이 관현악단도 통일된 특색 있는 연주에 의해 곧 유명하게 되었다. 합창단은 매년 엄격한 오디션에 의해 단원을 보충하면서 상임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관현악단은 일정한 고정 단원에 의하지 않고 인접한 여러 나라에서 방송이나 레코딩 또는 연주회 때마다 뛰어난 주자를 모으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리히터의 훈련은 엄격하기만 했다. 리히터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다고 해서 그 지휘에만 전념했던 것이 아니고,교수로서의 후진 양성과 교회에서의 임무도 다했다. 뿐만 아니라 오르간과 쳄발로의 연주회를 열고 각지에서의 연주 여행도 하는 등,바흐를 중심으로 한 음악에 정력적이고 헌신적인 봉사를 하였다. 또한 뮌헨과 안스바흐의 바흐 음악제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으며,서독 외무성 협조로 수병인 합창단과 관현악단을 이끌고 연주 여행을 하였다. 그러나 다망과 과로 때문인지 1981년 2월 15일 심장발작으로 뮌헨에서 별세하고 말았다. 오르가니스트로서의 칼 리히터는 뚜렷한 개성을 보인다. 그의 해석은 전통적인 바흐관(觀)에 머무르지 않고,그 자신의 지성을 통하여 재창조한다. 구체적으로 강약의 대비가 상당히 강조되고 냉철한 기운까지 감돈다. 그러면서 프레이징은 정밀한 설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의 연주는 어떤 경우에도 부드러움과 날씬함을 잃지 않는다. 세세한 배려가 구석구석에 미치고 때로는 아플 만큼 느껴지기도 하는데,윤기있는 그의 감수성이 그의 연주에 새영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또한 리히터의 오르간과 쳄발로 연주는 악센트와 리듬을 분명히 한 것으로 낭만적인 맛이 있다. 그래서 그의 바흐 연주는 주관성이 강한 연주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바흐의 정신에 깊이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70년 후반에 들어와서는 기교의 쇠퇴 때문인지 템포의 변동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지휘도 오르간이나 쳄발로의 연주와 공통된 면을 가지고 있어서 화려한 색채를 배격하면서,서정성과 강한 긴장력을 솜씨있게 배분하고 있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러서는 예전의 격정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고,또 완고성 때문인지 독창자나 독주자와 잘 협력되지 않는 면도 노출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연주가의 인선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표출되었다. 지휘자로서의 리히터는 오르간 연주 때의 그 특징 그대로인데,매우 절도가 바르고 엄숙한 양식이 아름다운 서정과 잘 융합된다. 때로는 템포를 교묘히 유동시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솜씨는 대단히 절묘하다. 그 많은 레코드 가운데서 대표적인 명연반으로는 주로 뮌헨 바흐 관현악단을 지휘한 것들인데,우선 바흐의 <관현악모음곡 전집>은 바흐 시대의 향기를 소중히 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학구적인 자세로 잘 살려낸 명연주다. 거듭 반복해서 들어도 신선한 느낌을 다시 불러일으키는데 그의 젊음에 비해 이미 완벽한 경지에 이른 이 곡의 대표반 중 하나이다. 그리고 헤플리거,엔겐,제프리트,피셔-디스카우를 기용한 옛 녹음인 바흐의 <마태 수난곡>,슈타더,퇴퍼,피셔-디스카우 등에 의한 <b단조 미사곡>(모두 아르히프),야노비츠,분덜리히 등에 의한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야노비츠,회프겐,크라스 등에 의한 헨델의 <메시아> 전곡반,그리고 수많은 바흐의 <칸타타곡집>,그리고 모차르트의 <레퀴엠>(텔레푼켄) 등이 있는데,이들은 모두 굉장한 박력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는 명연들이다. 쳄발로나 오르간의 레코드는 아주 많지만 <토카타와 푸가>,<환상곡과 푸가> 등 명곡이 담긴 <바흐 오르간 리사이틀 제1~제4집>(그라모폰),바흐의 <오르간 전집 제1권~제6권>,자신이 지휘와 독주에 의한 헨델의 <오르간 협주곡집> 전12권 등이 선곡이 좋고 연주도 확고한 손꼽히는 명연반이다.
쳄발로 주자로서의 리히터도 대단히 뛰어난 존재였다. 악곡의 파악이 아주 대담하고 격정이 샘솟는다. 그러나 오르간 연주 때처럼 단려한 자세는 아니다. 쳄발로 주자로서 남긴 레코드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바흐의 <쳄발로 리사이틀>,그 자신이 안스바하 주간 실내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 독주한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 제1번>,플루티스트 니콜레의 연주에 자신이 통주저음을 맡은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집> 등이 굴지의 명연반이다. 바흐 음악의 해석자로 유명한 칼 리히터는 바흐 음악의 형이상학적인 뜻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합창을 편성할 때에도 전통적인 소년합창단을 쓰지 않고,소프라노와 알토를 동원하며 대학생 나이의 젊은 여성을 뽑았다. 소년합창단으로는 가사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리히터는 프러시아 스타일의 가혹한 훈련을 하기 때문에 가냘픈 여성들은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바흐 음악에 절대 필요한 순수하고도 수정처럼 청순한 뜻을 이룩하려면 안이한 태도로는 안됩니다"하고 말하곤 했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b단조 미사곡>의 "십자가에 못박혀"를 느린 템포로 슬프게 연주하지만,리히터는 빠른 템포로 경쾌하고도 우아하게 연주했는데,그리스도의 죽음보다도 다가올 부활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바흐는 당시 대부분의 곡을 스스로 지휘했기에 다이나믹스나 템포의 세밀한 지시를 스코어에 쓸 필요가 없어서 표정 기호가 적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해석에 따라 훨씬 달라질 수 있다. 어쨌든 칼 리히터는 당대 최고의 바흐 연주자였다. 출처 : 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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