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 BWV1051 - Herbert von Karajan

리차드 강 2017. 9. 12. 17:45

Brandenburg Concerto No.6 in B flat major, BWV1051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 BWV1051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1. Allegro - 2. Adagio ... - 3. Allegro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은 특이하게도 독주부와 합주부의 구별이 없다. 더욱이 바이올린을 전부 빼 버린 특이한 악기 편성을 하고 있다. 그 대신 비올라가 제1, 2부로 나누어져 있고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가세하여 현악 3부를 이룬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각 현악기군이 독주부도 될 수 있고 합주부도 될 수 있는 독특한 연주 효과를 낸다. 1718년 경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협주곡의 6번에서 볼 수 있는 악기배합인 비올라 다 브라치오와 비올라 다감바 등의 낮은 현악기의 조합은 바이마르 시대의 칸타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으로 이 즈음에 바흐는 바이마르 시대에 비발디의 이태리 협주곡에 심취되어 있었으므로 비발디이 영향도 엿보이지만 각각의 곡 속에서 독주악기의 다양한 배합은 바흐 음악의 뛰어난 특성인 구조적 다양성과 선율적 창의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 6개의 협주곡들 중에서 1악장은 가장 길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는 3부 형식 구조가 지배적인데 이러한 3부형식은 고전적 소나타형식을 예견하였으며 빈 고전주의스타일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테마와 동기들을 처리하고 있다. 느린 2악장들에서는 독주악기들이 지배적으로 등장하며, 그 테마들은 표현적이며 개성적인 선율을 전개 시키며 이러한 선율들은 주로 모방에 의하여 전개된다. 마지막 악장들은 활기찬 춤곡 스타일의 곡들이 그 주요 테마로 나타나는데 대단한 기교적 패시지로 전개된다.

이 협주곡은 아마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중 가장 먼저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바흐는 처음 두개의 협주곡의 현혹적인 찬란함과 제6번의 거의 비밀스러움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 친밀성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작품들보다 색채와 음색에서 훌륭한 대조를 여기서는 성취하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바로크시대 작곡가들이 바이올린 없는 협주곡 쓰는 것을 고려했던가? 아마도 텔레만은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제는 비올라, 감바, 첼로, 그리고 통주저음 악기만을 사용하는 형식의 명작을 창조한 바흐에게 남겨진 과제였다. 사실 이 악기구성은 17세기 영국의 비올족 실내악단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역시 현으로만 구성된 협주곡 제3번과 같이, 바흐는 음역에 따라 악기들을 그룹짓는다. 그러나 제3번과는 달리 음악의 선율적 대위적 본질은 첼로와 함께 독주적 요소를 제공하는 비올라로 제한되어 있다.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의 리토르넬로에서 감바는 기교적으로 보다 쉬운 반주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아마도 열렬한 음악 애호가이며 쾨텐에서 바흐를 고용했던 레오폴드 공이 아마추어 감바주자였다는 사실에서 연유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또한 우리는 레오폴드공이 그의 스승이었던 크리스티안 페르디난트 아벨과 함께 연주회에 참여했음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느린 악장, 즉 제2번과 제5번 협주곡이 느린 악장과 유사한 이 트리오 소나타 작품에서 감바는 생략된다. 그리고 영감이 풍부한 피날레에서 이 악기는 단지 간간이 텍스쳐에 기여할 뿐이다.

     

     

작품개요 및 구성

작곡 연도: 1718년 경 / 작곡 장소: 쾨텐(Köthen)

헌정, 계기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폰 브란덴부르크(Christian Ludwig von Brandenburg)에게 헌정됨. 독주악기군와 합주악기군의 구별이 없으며 바이올린이 사용되지 않음.

악기 편성

비올라 다 브리치오(비올라) 2부, 비올라 다 감바 2부, 첼로, 통주저음(비오로네, 쳄발로)

 

악장 구성

1악장 Allegro, B flat장조 2/2박자

바이올린이 빠진 악기편성으로 단순한 음색으로 진행함. 화음반주 위에 비올라 2부가 카논 형식으로 등장하는 투티 주제가 6회 등장함.

2악장 Adagio ma non tanto, E flat장조 3/2박자

비올라 다 감바가 휴지함. 처음 11마디가 여러 번 반복 진행하며 여러 형태로 변화되어 등장함.

3악장 Allegro, B flat장조 8/12박자

1악장과 동일한 리토르넬로 형식임. 투티 주제 사이로 등장하는 독주 주제는 투티 주제의 변주 형식임.

     

     

작품구성

독주부와 합주부가 구별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바이얼린이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그 특징입니다. 사용악기 가운데는 비올라 다 부라쵸(Viola da Braccio)가 가장 중요한 기능을 가지며 따라서 곡 전체가 음색에 있어서 차분하게 안정된 점잖은 것이 되고 6곡 가운데서도 가장 이색적인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편성은 2개의 비올라와 비올라보다 조금 작은 비올라 다 감바 2개, 첼로, 콘트라바스, 쳄발로 그리고 6부의 합주로 되어 있다.

 

제1악장 Allegro, B플랫장조, 2분의 2박자

이 악장은 세도막형식을 채택하여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와 저음의 8분음 부위에 비올라 다 부라쵸가 반박자 늦은 카논을 연주합니다. 이 카논은 16소절로 끝나며 다른 주제가 같이 카논이 되어 나타납니다. 이 주제는 최초의 주제의 동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2개의 주제가 그 뒤 여러가지로 얽혀서 삽입부를 만들고 처음 부분의 단편과 교체하면서 제 113소절에 이릅니다. 그 뒤 처음 카논이 완전히 반복되면서 이 악장이 끝납니다.

 

제2악장 Adagio ma non troppo(Eb Major), E플랫장조 2분의 3박자

이 악장에서는 비올라 다 감바가 거의 휴식하고 있습니다. 첼로의 저음에 비올라 다 부라쵸가 상냥한 노래를 계속 부릅니다. 이 베이스 성부는 이색적이며 첼로는 저음의 파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악장의 구성은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 곡은 사실상 E플랫장조임에도 불구하고 조기호는 B플랫장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3악장 Allegro, B플랫장조 8분의 12박자 악장은 지그

지그는 보통 2부형식으로 만들어집니다마는 이 경우는 불규칙한 론도형식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단편적으로 16분음부의 악구와 교대하여 몇번인가 조바꿈하면서 최후에 완전히 나타나서는 이 곡이 종지합니다. 더욱 2악장 끝의 화현은 페르마아타가 붙어져 있습니다만 종지를 표시하는 가로줄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제 2악장은 제 3악장의 도입부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제 2악장이 사실상 E플랫장조이면서도 B플랫장조, 곧 제 3악장의 조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 별로 부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바흐의 탐구 정신의 역작이며 다양한 형식과 스타일과 악기로 예술적인 미를 실현하려 했던 놀라운 증거일 것이다. 이 곡은 그 형식이 합주 협주곡의 형식과 같다. 그러나 바흐는 독주(또는 독주부)와 합주부와의 관계를 여러 가지 다양한 형식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풍부한 형식의 협주곡은 제1번과 제6번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바흐는 이탈리아,프랑스,독일의 스타일과 형식을 실험하고 결합하고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협주곡의 형식은 전도되었으며 간단한 3중 소나타(sonata a tre)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각 협주곡에 나타나는 박자는 매번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바흐가 작곡한 6곡으로 된 협주곡집(BWV 1046∼51). 이 명칭은 1721년에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작 C. 루트비히에 게 헌정되었던 일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 협주곡집은 처음부터 백작을 위하여 작곡된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 작곡된 협주곡 중에서 6곡을 뽑아 정서하여 헌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협주곡의 악기편성과 내용이 당시 겨우 6명 밖에 없었던 백작의 궁정악단에 맞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당시 바흐가 악장을 맡고 있던 쾨텐 궁정악단을 위하여 작곡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개개 곡의 작곡연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많아 현재로는 결정적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6곡은 각각 다른 악기편성으로 되어 있는데, 각 악기가 동등하게 다루어지는 협주곡(제1 번 F장조, 제 3 번 G장조, 제 6 번 B장조)과 독주 악기군이 현악합주에 대립하는 합주협주곡(제2 번 F장조, 제 4 번 G장조, 제 5 번 D장조)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곡 모두가 유쾌함이 가득 찬 악상으로, 바흐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인기가 있다.

양식적으로는 제1번(바장조) ·제2번(바장조)이 합주협주곡, 제3번(사장조) ·제6번(내림나장조)이 콘체르토 심포니아이며, 제4번(사장조) ·제5번(라장조)은 보다 새로운 독주협주곡에 접근하고 있다. 바흐는 이 중 몇 개의 악장을 칸타타로 전용하여 제4번은 《하프시코드협주곡》 제6번으로 편곡했다.

이 여섯 곡의 협주곡은 네 곡의 관현악 모음곡과 함께 바흐의 오케스트라 작품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 협주곡이라고는 해도 후의 고전파나 낭만파의 것과는 달라서 두 개 이상의 악기에 의한 독주악기군(콘체르티노)이 하프시코드를 더한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합주부(리피에노)와 주제를 응답하면서 곡이 전개되는 이른바 합주 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합주 협주곡은 이타리아의 작곡가 코렐리(1653-1713)가 창시했다고 하는데 , 그러한 이탈리아의 협주곡과 독일의 전통적인 폴리포니 음악이 훌륭하게 종합되어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작곡경위

1719년 바흐는 레오폴트공을 수행하여 베를린을 여행하였다. 거기서 그는 브란덴부르크의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후작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후작은 바흐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좋은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바흐는 그의 요청을 다급하게 여기지 않았던 때문인지 1721년에 다시 재촉을 받을 때까지도 작곡을 시작하지 않았다. 결국 바흐는 쾨텐의 궁정악단을 위해 써두었던 작품을 보내주게 되는데 그것이 오늘날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6개의 협주곡집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역사상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브란덴부르크의 후작은 이 6개의 협주곡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해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협주곡의 진가를 깨닫지 못하여 사례는 물론 이 협주곡들을 연주하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흐의 협주곡들은 그 귀족의 도서관 목록에조차 올려지지 못했다. 그들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포함한 177개의 협주곡들을 두 번에 나눠 작품당 4그로첸을 받고 팔아 넘겼다.

1721년 3월24일, 브란덴부르크의 후작에게 바쳐진 헌정사는 유명한 18세기 사회사로, 독일궁정의 관례에 따라 불어로 기록되었는데, 이 글은 바흐 헌정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바흐를 위해 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전하께서는 2년 전 바흐를 알현하셨을 당시 바흐에게 몇편의 작곡을 명하시는 영예를 부여하셨습니다. 바흐는 지고하신 전하의 뜻을 받들어 비천한 작품을 만드는 무례를 범하니 부디 전하의 고상하고 정교한 감각이 이 보잘것없는 작품을 탓하지 마옵소서 이것이 형식적인 표현이었다는 것은 이 음악의 모든 소절 속에 살아 숨쉬는 그의 불굴의 정신과 냉정함, 개성, 그리고 철두철미한 정직성을 통해 볼 그대로 나타난다.

     

     

브란덴 부르크 협주곡(Brandenburg Concert BWV 1046 ~ 1051)

바흐는 풍요롭고 행복한 쾨텐에서 가족과 함께 오래오래 음악을 하며 살려 했지만 1720년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가 어린 자식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고통은 바흐를 더욱 일에 몰두하게 했습니다. 1721년 겨울이 끝날 무렵 그는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완성했는데 3월 24일 크리스티 루드비히 폰 브란덴부르크에게 헌정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여러개의 독주악기를 위한 협주곡이었지요. 각각의 독주악기에 현악 합주를 대비시켰으며 바흐는 헌사에서 이것을 '다양한 악기들과의 협주' 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바흐는 몇 년전 크리스티 루드비히 폰 브란덴부르크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가 쾨텐을 위해 주문된 새로운 하프시코드를 손에 넣기 위해 베를린에 있을 때인 1719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주 크리스챤 루드비히는 베를린의 궁전에 살면서 자신이 직접 6명의 음악가로 이루어진 소규모 악단을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아들의 만남은 아마 음악 창작을 함께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 그 영주는 아마도 바흐의 작품들에 익숙해지고 싶은 요구를 표현했을 것입니다. 이 요구는 쾨텐의 궁정악장이었던 바흐가 그에게 6개의 협주곡을 헌정했던 1721년에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바흐의 협주곡들이 베를린에 있는 그 영주의 악단에 의해 연주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지요. 오직 제5번과 제6번 협주곡만이 실제로 그곳에 있던 몇 안되는 음악가들을 확대시키지 않고서도 연주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 헌정된 악보가 사용된 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 작품들이 연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든 연주되기 위해서는 총보에서 개별 성부들을 위한 악보로 다시 정서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아뭏튼 그 협주곡을 쓸 때 바흐는 베를린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쾨텐의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습니다. 그가 이끈 소규모 실내악단의 정확한 구성에 대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결코 정서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협주곡들의 관현악법은 쾨텐에서의 연주 실제와 관련해야만 상세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실제로 바이올리니스트로 출발했던 바흐는 스스로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으로 "화성의 중간 성부"를 담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창조적 재능을 지닌 바흐는 그의 <브라덴부르크>협주곡에서 옛 것과 새것을 통일시켜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작품에서 그는 과거의 회상을 현재와 융합시킴으로써 전체 협주곡의 전통을 보여줍니다. 그는 결코 진부한 관습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가장 개성있는 방식으로 각각의 패턴을 변형시켰습니다.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형식들을 새롭게 결합시키고 변형함으로써 말입니다. 독주 협주곡과 합주 협주곡을 독특하게 혼합시킨 것은 협주곡의 역사에서 그가 가장 독창적으로 기여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이후 바이올린 혹은 하프시코드를 위한 그의 독주 협주곡들에서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 작품들에서는 참여하는 악기들 간의 대조가 아니라 오히려 융합이 강조됩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그는, 협주곡의 악장을 동질적인 구성으로 만들어내는 이태리인들보다 훨씬 더 일관적입니다. 따라서 <브라덴부루크>협주곡은 협주곡이라는 형식의 발전에 있어서 일종의 이정표 같은 것입니다. 250년이 지나 지금에도 그 작품은 여전히 현대적이니 말입니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