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을 느끼게 하는 그리스도의 주검
바젤 미술관은 세계 어떤 미술관보다도 홀바인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덤 속의 그리스도 주검>이란 그림이 특히 유명한데, 이 그림은 당시 신성시되었던 그리스도의 육체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는데, 이토록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린 그리스도의 주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는 흰 천이 깔린 바닥 위에 시신이 길게 누워 있습니다.
바짝 마르고 굳어버린 몸뚱이와 검게 변해버린 얼굴과 손발, 그리고 옆구리에 창에 찔린 상처와 손등에 못에 박힌 흔적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힘없이 열린 입술과 이미 초점을 잃고 풀려버린 눈동자를 한 이 주검은 그 참혹한 모습으로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 여기에는 신의 아들로서의 위엄이나 권위를 어느 한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의 주검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이런 모습은 이전의 다른 화가들이 묘사한 그리스도의 주검과는 너무나도 대조를 이룹니다.
이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검게 변한 죽은 그리스도의 얼굴은 옆으로 조금 기울었고, 빳빳하고 메마른 머리카락은 하얀 수의가 덮여 있은 관의 바닥 위로 아무렇게 흩어져 있으며, 턱수염은 관의 덮개 쪽을 향해 뻗쳐 있고, 검게 변한 발은 돌로 만든 관의 벽 가까이에 놓여 있습니다. 오른손은 구겨진 시트의 가장자리에 힘없이 놓여 있고, 허리에 두른 천을 제외하고는 알몸인 채로 있습니다. 뼈와, 그리고 힘줄이 드러난 근육들이 힘없이 내려앉은 피부를 통해 드러나 보입니다.
이처럼 사실적으로 그린 이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그린 그림이란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미술관 벽에 안치된 시체 바로 그 자체와도 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느낌이 화가에 의해 만들어진 착시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처럼 이 그림은 실제로 시체를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러니 이 그림을 그린 홀바인의 그림 솜씨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림의 형태도 관의 모양과 같이 기다란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있어 큰 효과가 있습니다. 폐쇄공포감마저 자아내는 이런 형태의 그림에서 홀베인은 창에 찔린 상처에 있는 검은 피딱지나 갈비뼈 부분의 돌출, 그리고 작고 초점을 잃은 눈 등 주검 자체를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이 주검에서 보편적으로 보아왔던 그리스도의 죽음을 연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주검의 모습일 뿐입니다. 홀바인은 마치 병원 영안실에 보관된 사고로 죽은 어느 희생자의 모습처럼 그리스도의 주검을 묘사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표현한 예술가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홀바인은 왜 이토록 인간적인 모습을 한 그리스도의 주검을 그려야만 했을까요? 이런 의문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죽음에 대한 홀베인의 견해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꽤 가치 있는 일입니다. 비록 그것이 두렵고 우울한 일이긴 하겠지만 결코 의미없는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글 출처 : Pleasure from Emptiness [2009/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