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윤명숙님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리차드 강 2007. 7. 6. 06:51

삶이 어차피 연극이라면

흔히 인생은 연극이라 하더이다
삶이 한편의 연극이라면
기왕이면, 각본 없는 삶보다
영혼을 채찍질하며 가꾸어가는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리라

우리 인생이 뭔가를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면
죽어 한 푼도 가져 갈 수 없는 물질적 욕구보다
뚜렷한 목표아래, 만인을 위한 삶
예술적 가치를 드높이는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리라

삶이 어차피 연극이라면
그대 이 세상에 와서 어떤 삶이 올곧은 연극인지
혼신의 힘으로 치열하게 보여주고 막을 내리니
많은 이들이 본받을 것이리라
탐욕에 찌들어 끝없이 채우려고만 드는 자들!
어찌 그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겠는가

윤명숙 동지여!
그대 잘 가라는 말은 않겠네
만인이 본받을 한편의 드라마로 승화한  
그대의 영혼을 오직 부러워할 뿐이니
그대 어디를 가더라도 내세 어떤 삶일지라도
평화롭지 않겠는가

불꽃처럼 살다 가는 윤명숙 동지여!
영면하라
고이 영면하라
                        - 2007.6.29. 안윤길

 

 

극단 ‘새벽’의 이성민 선배로부터 늦은 시각이지만 꼭 만나자는 전화를 받은 것은 6월 19일 화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저는 24일 일요일에 세례를 받을 예정인 안과의사인 대자와 암남공원 입구의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대충 자리를 파하고 우리의 아지트격인 실천무대 극단 새벽의 공연장과 붙은 <시지프스의 하늘>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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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는 배우 윤명숙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인데 지난 해 가을 모 대학병원에서 유방암을 수술 받고 지금은 온몸에 퍼져 수술한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하자고 하는데, 환자 자신도 항암치료에 거부감이 강하게 나타내어 조용히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병원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남편도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저는 구호병원에 한 번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구호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수녀님들이 환자를 한 번 방문해서 결정을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구호병원에는 병실도 마땅치 않고 중환자실도 없는 상태라 호스피스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나서 수녀님들은 입원이 어렵겠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호흡은 가쁘고, 황달이 심했고, 배에는 혈성복수가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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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 있는 제가 과장으로 근무했던 해동병원의 친한 내과과장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말기암환자 terminal care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내일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라고 하였지요. 다음날 전화로 물었더니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중환자실이란 게 면회시간 외에는 환자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전화를 넣었습니다. 되도록이면 병실로 옮겨서 가족과 사랑하는 극단 새벽의 배우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러고 저는 대자 세례식에 참석하고 환자 진료에다 구호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조금 바쁘게 지내다가 윤명숙님의 부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윤명숙님의 후배인 배우 현주씨가 전화로 극단 새벽장을 치르게 되었다고 알려왔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고 허망하던지요. 살아생전 찾아뵙지 못한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녁 8시 병원 일을 마감하고 극단 새벽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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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 가니 너무나 아름다운 영정이 놓여 있었습니다. 현주씨가 “우리 언니 너무 이쁘죠?” 하며 웃는데 두 눈은 눈물로 부어 올랐더군요. 저녁 10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고인이 걸어 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가슴에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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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작품을 훓어 보면, 그이가 어떤 배우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극단 ‘새벽’과 함께 시대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말이다. 노동과 농민문제, 광주항쟁, 교육과 여성문제 등 커다란 이야기를 무대위에서 몸으로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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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한국문학을 재해석한 <새허생 이야기>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 <청개구리는 날이 궂으면 왜 우는가...>, 88년 광주항쟁 재현극 <5월 별신굿>, 89년 참교육과 교단민주화를 위한 공연 <수/우/미/양/가>, 90년 섬유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연극 <다시 서는 사람들>, 93년 <아이꼬의 노래>, 94년 갑오농민항쟁 100주년 기념공연 <새야 매야>, 95년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공연 <히바쿠샤> 민가협 어머니들을 위한 공연 <어머니>, 96년 이 땅의 어머니와 딸들을 위한 공연, 윤명숙 일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으로 국제연극평단 ‘96 올해의 좋은 연극상’을 수상, 97년 세태풍자극 <아닌 밤중에> 철거민과 달동네 사람들을 위한 공연 <달과 곱추>, 98년 여성들을 위한 공연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이의 있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99년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공연 <3인 특별위원>
그리고 지금은 일곱 살인 아들 어진이를 위해 장기휴가에 들어갔다가 장흥에서 죽공예를 하시다가 유방암을 늦게 발견하고 6월 27일 오후 7시 해동병원에서 운명을 달리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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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부산일보는 이렇게 부고를 전했다. 부산이 고향인 윤씨는 1985년 극단 새벽에 입단해 사회성 짙은 2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 왔다. 특히 1996년 첫선을 보인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왜곡되게 형성된 여성의식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극단 새벽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윤씨의 쾌차를 기원하며 지난 15일부터 배우 변현주를 내세워 '어머니 날 낳으시고'를 무대에 올린 극단 새벽은 윤씨가 운명을 달리함에 따라 공연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극단 새벽 측은 윤씨의 장례를 단원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그가 생전에 활동했던 부산 중구 광복동 소극장 실천무대에 빈소를 마련했다. 발인은 29일 오전 10시.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한 뒤 유해는 현재 그의 가족이 있는 전남 장흥군으로 옮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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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는 흥겨웠다. 후배 단원들이 윤선배가 연습하기 전에 목청을 틔우기 위해 즐겨 부른 노래라며 <청계천 8가>를 불렀고, 민중가수 우창수님은 <사람이 그립지 않소>를 부르며 명숙 누나를 추모했고, 우리 모두는 배우 윤명숙을 가슴에 묻으며 “너의 빈 잔에 술을 따라라~”로 시작하는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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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은 삼우제이자 극단 ‘새벽’의 창단기념일이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해 많은 분들이 왔다. 극단 새벽 단원들은 모두 고인을 가슴에 묻고 눈물을 삼키며 극단 선배 앞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장흥에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뤘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의사로서 병원에서 많은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았지만, 언제나 죽음은 슬프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일찍이 데려가시는지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경구다.

+ 주님, 배우 윤명숙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출처 : 돌팔이의 블러그 │ 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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