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갈망

투표에 영향이 없는 신앙생활 - 황상근 신부 │ 칼럼

리차드 강 2013. 3. 12. 10:10

투표에 영향이 없는 신앙생활

황상근

바오로 신부는 신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는다. 사목도 잘 하고 책임감도 있고 기도를 많이 한다. 독서를 좋아하고 특히 성서에 대한 작은 책자를 저술할 정도로 학구적이다. 복음성서의 주요 가르침이 사랑이므로 사랑을 많이 강조하고 본인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에 자주 헌금을 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한다. 주로 부유한 성당에서 일했으므로 부유한 사람들과 많이 어울려 지낸다. 골프를 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보수 신문을 구독한다. 따라서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고통 받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그들의 어려운 환경도 이해 못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자선은 좋지만 불공정하고 잘못된 체제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예수님의 정신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만 선거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저버리는 투표를 한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위해 표를 던지나

많은 교회가 이러한 경향이 있다. 성당의 회장이나 사목위원들이 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보수정당이나 여당 성향이 강하다. 신부가 사회문제나 잘못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치발언이라고 항의를 한다. 함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발언을 자제시키면 더 이상 이야기하기 어렵다. 공의회 문서나 전에 주교단 성명을 보면 사회, 정치 분야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있으면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실 해야 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이 확산되면 교회는 정치적으로 보수편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부자들 속에서 살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소위 지방색이 강해서 어느 지방에 사느냐에 따라 투표가 갈라진다. 수십 년간 어떤 정당이 더 옳게 일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느냐를 판단해서 투표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수십 년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만들어놓은 정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 갈라져서 서로 상반되는 정당에 투표를 해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나 언론 장악하는 정당이 다른데도 항상 같은 정당에 투표를 했다.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같은 성서를 읽고 기도를 해도 동쪽과 서쪽의 투표 성향에서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

위의 두 예를 보면서 널리 알려진 칼 마르크스의 말이 생각난다. “ 사람은 생각이 그 사람을 규정하지 않고 존재가 그 사람을 규정한다.”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무슨 말을 듣고 사느냐 보다는 그 사람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세상은 밑에서 보아야 제대로 본다”는 말이 있다. 진리나 정의 등은 이 사회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고 한다. 이 사회 밑에는 억울한 사람들, 심각한 사람들, 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이 많다. 이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아야 깨여있게 되고, 세상의 잘못된 것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므로 변화를 추구하며 노력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투표도 예수님처럼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생활한다고 해도 문제의식이나 심각한 것을 모르고 산다면 잘 못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심각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림들이 많은데,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나만 태연하게 산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문제의식이 생기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런 말을 하였다. “하느님은 자신의 모습대로 세상을 창조하였지만 사람들은 자기 모습대로 하느님을 만든다.” 고통스럽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과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지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다. 보수, 수구적인 경향의 사람들과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의 희망이 다르므로 하느님의 모습도 다르게 그리고, 기도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이기적인 자기 성향을 벗어나 성서에서, 또 양심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강우일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모델로 삼는 이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어느 한군데 정주해 있기보다는 늘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예수님이 당시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달랐던 점은 그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소외되고, 밀려나고, 저주받는 밑바닥 계층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어울렸다는 점이다.”

황상근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목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황상근 신부는 1969년 12월 사제로 수품된 후 덕적도 및 답동본당 보좌와 강화ㆍ백령도ㆍ도화동ㆍ십정동ㆍ부평2동ㆍ삼정동ㆍ장기동ㆍ제물포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또 1984년부터 8년 동안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전국 지도신부를 맡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다. 황 신부가 1989년 출간한 「벽돌 없는 학교」는 가톨릭노동청년회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아울러 사회ㆍ정치적 혼란기인 1970~80년대부터 지금까지 민주화와 사회정의, 인권운동에 앞장서왔으며, 2009년부터는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경인운하와 4대강 개발사업 저지 등 환경보전에 힘을 모으고 있다.

황 신부는 특히 수품 이후 40년 동안 한 번도 보좌신부나 식복사를 두지 않았고, 평생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자신의 영명축일이나 서품기념일에는 홀연히 사라지는 등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는 검소하고 청빈한 사제의 모범으로 살아왔다. 황 신부는 본당 사목회의 간곡한 요청으로 가까운 동료 사제 몇 명만 참석한 가운데 2010년 1월 17일 제물포성당에서 조촐한 은퇴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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