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아리랑 - "뉴욕 필하모니, 로린 마젤 (지휘)"│2008 평양..

리차드 강 2009. 4. 10. 17:23
아리랑
 
 
     
 
아리랑 (편곡 : 북한 작곡가 최성환)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 Lorin  Maazel  cond.
     
 
[뉴욕필 평양공연시청기] 북한 국가를 들으며
오늘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공연 실황중계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평양 동평양대극장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제안을 받아들여 음향판을 새로 설치했다는 대극장의 거대한 대형 그림들은 우리의 예술의 전당이나 새종문화회관을 생각나게 하더군요.
저는 북한 애국가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우선은 지휘자 로린 마젤과 뉴욕 필하모닉이 마음을 담아 최선으로 연주하는 것에 놀랐고, 다음으로는 약간 비장한 듯 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선율에 놀랐습니다. 또한 애국가의 관현악으로 편곡한 실력에 놀랐습니다.
그 순간 솔직히 우리의 애국가가 좀 초라해 보였습니다. 몇 년전부터 일기 시작한 안익태 선생의 친일 논란도 생각이 났고, 무엇보다 우리 애국가의 예술성이 떨어지는 선율과 관현악법도 떠올랐습니다.
전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오늘 평양에서 펼쳐진 뉴욕 필하모닉의 역사적 공연이라는 무게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마음을 다하는 연주, 그에 더하여 우리의 초라한 애국가를 떠올리게 만든 북한 애국가의 수준을 지켜보는 일은 참 복잡미묘했습니다. 미국 국가든 북한 국가든 제게는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는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 앞에서 저는 가슴으로부터 솟구치는 감동을 완전히 억제할 수없었습니다.
그러나 감동은 거기까지였던 것같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전주곡이나 드보르자크의 <신세계교향곡>, 그리고 거슈인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들으면서는 "뉴욕 필하모닉이니 저 정도 연주는 해야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청했습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는 제가 워낙 이 곡의 대가들인 바츨라프 노이만이나 라파엘 쿠벨리크 등등의 연주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큰 감동을 경험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80이 다 된 나이에 정식 연주곡을 모두 악보 없이 암보로 지휘하는 로린 마젤에겐 경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그의 연주는 보헤미안적인 부분이든 아메라키적인 부분이든 웬지 2프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을 지휘자 없이 연주한 것에는 마음껏 박수를 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을 떠난 지 수 십년이 지났을 뿐 아니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로린 마젤이 기꺼이 지휘대를 비워놓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는 아무리 <캔디드 서곡>을 뉴욕 필하모닉이 세계 초연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주요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곡은 변화가 많고 리듬 또한 복잡하기 때문에 106명이 지휘자 없이 연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상황 속에서 뉴욕 필하모닉이 이 곡을 지휘 없이 연주했다는 사실은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거기도 옥의 티는 있었습니다. 저는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이 곡에 너무 중독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 뉴욕 필하모닉의 리듬과 선율미가 싱거운 커피처럼 아쉬웠습니다.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아리랑. 음악이 세게 공용어라고 느낄 땐 뉴욕 필하모닉같은 외국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아리랑을 연주할 때입니다. 저들의 연주는 한국인인 제가 듣기에도 꽤나 그럴싸하게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더군요. 곡도 꽤 잘 썼더군요. 특이했던 것은 작곡자가 좀처럼 솔로를 할 기회가 없는 피콜로에게, 그것도 다른 곡들처럼 높은 음역에서 주 선율을 1옥타브나 2옥타브 위에서 반복하거나 주선율에 장식적인 효과를 내주는 방식이 아니라 저음역에서 당당하게 솔로를 맡긴 부분이었습니다. 웬만한 작곡가였다면 당연히 플륫에게 맡겨야 할 솔로를 피콜로에게 맡긴 것은 참 색다른 시도였다고 보여집니다. 뒤늦게 알아보니 작곡가가 북한 작곡가 최성환씨 더군요. 역시 아리랑이 연주되자 북한 청중들의 반응이 달라지더군요. 그 광경을 바라보는 제 가슴에도 파문이 일었구요.
끝으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여성 사회자와 로린 마젤의 통역을 맡은 북한 젊은 여성의 맨트에 대해 한마디 안할 수가 없군요. 저는 평소 소위 북한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소름도 끼치고 간지럽기도 하구요.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더군요. 조금 과장하자면 북한 젊은 여성들의 톤과 억양은 분명 제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년 남성인 제 맘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오늘 같은 젊은 북한 여성의 맨트에 오금이 저렸을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흉내가 아니라 본토에서 본토 발음으로 듣는 것에는 분명 다른 차원의 감동이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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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 실천이다."- 임마누엘 레비나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