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츠 : 장송음악,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연주 :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 루돌프 마우에르스베르거(지휘) 쉬츠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는 숭고한 음악으로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연중의 명연이다. 종교 합창곡의 극치를 보여주는 경건하면서도 완전한 조화의 아름다운 세계가 전개된다. 특히 슈라이어를 비롯한 독창자들의 순도 높은 가창은 한층 더한 감명을 전해준다.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의 첫곡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가혹한 고통을 견디며>라는 합창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메어질 듯하고 눈물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목이 메어 제대로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듯 부르는 깊은 슬픔에 잠긴 노래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오라토리오 양식의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독창 레치타티보로 되어있다. 그리고 자유롭고 매우 표정이 풍부한 예수의 말씀 부분은 언제나 통주저음과 현악기의 반주가 따르고 있다.
7번째의 말씀이 끝난 후 신포니아가 반복 되면서 짤막한 종결합창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다. 이 음악이 가지는 성격은 조용하면서도 마음깊이 느끼는 신앙과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의 모습 앞에서 열렬하면서도 한없이 정중한 헌신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웹에서 발췌)
하인리히 쉬츠 (Schütz, Heinrich,1585 -1672)
바하보다 100년 앞서 태어나 활약한 17세기 독일 최대의 작곡가이다.
1585년, 독일 튀링겐 지방의 쾨스트리츠에서 여관을 경영하고 시장을 지내기도했던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태어난 그는 13살 때 헤센 변경백(邊境佰) 모리쯔 밑에서 소년 성가대원으로 있었고, 악장 게오르크 오토(마르틴 루터의 음악적 협력자인 발터의 동역자)의 가르침을 받았다.
한편, 변경백이 귀족의 자제들을 위해 세운 학교인 콜레기움 마우리찌아눔에 입학을 허가받아 라틴어 등 풍부한 인문주의적 교육을 받았다. 변성이되자 급비생으로 마르부르크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했는데 이는 가업을 잇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609년, 변경백은 쉬츠를 베네치아로 보냈다.
오르간과 작곡을 배우라는 명령이었다. 베네치아에서 그가 사사한 스승은 화려한 복합창(複合唱)의 대가인 지오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였다. 가브리엘리는 쉬츠를 특별히 사랑하여 그를 성심을 다해 가르쳤을 뿐 아니라 임종시엔 반지를 유품으로 주기도 했다.
베네치아 유학을 마친 후, 그는 카셀의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는데, 당시 독일 중부의 최대 군주였던 작센 선거후(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선거권을 가진 귀족) 요한 게오르그 1세의 요청으로 1617년에 드레스덴으로 옮기게 된다. 악장에 임명된 그는 1619년에 가브리엘리의 가르침을 기념하는 복합창 양식의 '다윗 시편곡집'을 출판했다. 1623년, 독일 오라토리오의 최초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부활제 오라토리오'(작품 3), 다음 해엔 4성부 종교 합창곡인 '신성 가곡집, Cantiones Sacrae'<작품 4>을 잇달아 출판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1628년, 그는 두번째의 이탈리아 유학을 갔다. 이 시절, 그는 몬테베르디 등으로부터 새로운 극음악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가 알게된 드라마틱한 모노디 양식은 후일 그의 제 2기의 작풍(作風)을 예고하는 '신성 교향곡 제 1부'(op.6)를 비롯, '교회 협주곡'(op.8,9), '십자가 위의 7가지 말씀' 에서 나타난다. 이무렵 독일 전토를 휩쓸고 있었던 30년 전쟁(1618∼48)의 참화는 드레스덴 궁정에도 밀려와 궁정악단은 사실상 활동을 중지하게 되었고 쉬츠는 휴가를 얻어 할레, 함브르크 등지를 떠돌아 다니다가 드레스덴 궁정과 인척관계에 있던 덴마크 왕궁에서 1633년부터 35년까지 악장으로 있었다.
30년 전쟁이 끝나자 즉시 드레스덴 악단의 재건에 착수하여 이 악단과 더불어 그의 여생을 오로지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에만 봉사하고 헌신했다. 이 때를 그의 제 3기로 분류하게 된다. 쉬츠는 독일 합창단의 전통에 뿌리박은 합창 폴리포니 양식과 북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콘체르타토 양식을 하나로 합친, 형식과 내용의 완전한 균형을 갖춘 고전적 경향의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다.
1648년에 쓴 '교회 합창곡집'(op.11)은 이런 의미에서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80세 전후의 고령인데도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누가 수난곡', '마태 수난곡'을 썼고 1672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드레스덴의 성모교회에 안장 되었다.
{하인리히 쉬츠}라는 저술로 유명한 에게브레히트는 쉬츠의 예술적 본질을 [독일적] [프로테스탄트적] [인문주의적]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특질을 기초로하여 매우 깊은 신앙심을 나타내는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여 필립 시피터에 의해 18권의 작품집에 수록 되었고, 1955년부터는 {新 쉬츠 협회}에 의해 계속 발간되고 있다.
주요 작품 개요
신성 교향곡집(Symphonae sacrae): 1629년과 1647년, 1650년에 3부로 나뉘어서 출판 되었다.
1부와 2부는 통주저음이 붙은 5성부나 6성부까지의 육성(肉聲)과 악기를 갖가지로 조합한 작은 합주용이다. 신성 교향곡의 모테트는 모두 선율적인 악상이 활기차 있고, 리듬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제 3부는 6개의 독창성부와 통주저음이 붙은 2개의 기악부로 구성되어있다. 대규모의 합창과 기악의 앙상블이 또한 여기에 어울리고 있다. 다분히 극적이어서 후에 생성되는 교회 칸타타의 구성 요소를 이미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것이다.
십자가 위의 7가지 말씀(The seven last Words) 오라토리오 양식의 작품이다. 이야기하는 부분은 독창 레치타티보로 되어있다. 그리고 자유롭고 매우 표정이 풍부한 예수의 말씀 부분은 언제나 통주저음과 현악기의 반주가 따르고 있다. 7번째의 말씀이 끝난 후 신포니아가 반복 되면서 짤막한 종결합창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다.
이 음악이 가지는 성격은 조용하면서도 마음깊이 느끼는 신앙과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의 모습 앞에서 열렬하면서도 한없이 정중한 헌신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Christmas Oratorio) 이 작품의 규모는 대단히 크다. 말하는 부분은 통주저음이 붙은 빠른 레치타티보로 진행되며, 장면들은 아리아, 합창, 콘체르타토 양식으로 된 기악반주에 의해 단독으로 처리된다. 명실공히 쉬츠를 대표하는 종교대작이다.
3곡의 수난곡(누가, 요한, 마태) 비교적 엄격한 성격의 작품들이다. 말하는 부분과 대화 부분은 모두 무반주 레치타티보 풍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기교적으로는 아닐지언정 정신적으로는 그레고리우스 성가에 흡사한 것이다. 아울러서 이 작품은 '십자가 위의 7가지 말씀'과 더불어서 바하 이전의 형식으로 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다.
글 출처 : 곽근수의 음악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