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생각하면 눈..

목마와 숙녀 - 박인희 | 박인환 詩

리차드 강 2009. 5. 19. 04:59

목마와 숙녀 - 박인희

박인희 1집 (Oasis 1974)

박인희 Park In Hee

Side B Track. 2 - 박인희 낭독 (박인환 詩)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박인환의 초기시는 해방 후 외국군대의 진주와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좌익에 가까울 정도의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낸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서 박인환의 시는 전쟁과 살육을 용인할 수도, 용인할 수도 없는 고뇌 속에서 비극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다는 양심적 가책은 결국 전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우익 쪽으로 선회하게 한다. 이러한 입장은 박인환 뿐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의 경우에도 해당될 것이다.

전후 박인환의 시는 극심한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주의적 양상을 보여준다. 삶의 터전은 무너지고 전쟁에 나갔던 젊은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쟁이 민족의 통일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준 것도 아니다. 전쟁은 어느 편이건 패배의 상처만 남긴 채 막대한 인명의 손실과 천만에 가까운 이산가족과 더불어 끝나고 만 것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에 값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이러한 전쟁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은 당시 휴전회담 반대라는 거대한 민족적 분노로 그 좌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를 생각할 때 허무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단지 민족해방과 자유수호라는 명분으로 색칠해진 살육, 운명의 장난에 불과했을 뿐인 것이다.

남아있는 것은 폐허와 허무의식, 그리고 모멸적인 삶 뿐이다. 그것은 죽음과 같은 삶이다. 여기서 그의 의식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허무적 센티멘탈리즘에 빠져들게 된다.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서 자행된 무수한 살육과 파괴, 그것은 인간적인 의지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나약성을 말해줄 뿐이며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노리개가 된 인간 자체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얻은 것 없이 단순한 살육과 파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시인이 추구해왔던 인간적인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신뢰에 깊은 상처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전쟁 전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고 그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박인환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보인다. 전쟁 기간 중의 비인간적 체험 때문에 다시는 미래를 꿈꿀 수 없고 과거에 대한 회상만이 가능한 것이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과거의 청춘의 추억만이 박인환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인환의 죽음 직전에 씌어진 것으로 이야기되는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들 시에 드러나는 것은 인생에 대한 허무와 과거에 대한 회고적 센티멘탈리즘이다. 이들 시가 깊은 천착을 통해 적극적으로 현실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박인환을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의지의 부족에 원인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 역시 박인환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전쟁을 마음 속에서 합리화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비극을 보게 된다.

<목마와 숙녀>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 형식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애도의 밑바닥에는 전후 박인환의 인생에 대한 허무와 회의가 짙게 깔려 있다. 박인환은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감을 제시하고 그것을 전쟁으로 인한 사랑과 인생, 문학의 죽음이라는 우리 현실에 비유적으로 관련시키고 있다. 버어지니아 울프가 절망적인 현대적 상황 때문에 인간에 대한 모든 가치와 신뢰를 상실하고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듯이 시인의 현실 역시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만큼 절망적이며 이는 곧 전쟁으로 인한 가치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단락은 버어지니아 울프의 삶의 지향과 절망에 대한 우리의 이해로 이끌어간다. 각 구절은 "―해야 한다"라는 당위를 나타내는 종결어미로 끝나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모든 가치가 훼손된 절망적인 상황을 다시금 인식시킴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시인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 처량한 목마소리,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가 서로 어울려 하나의 등가체계를 형성하며 진지하게 살고자 했지만 페시미즘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인생을 버린 늙은 여류 작가와 같은 삶의 포기에 도달치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녀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처량한 목마소리를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들어야 하며 동면을 거쳐 비로소 새로운 청춘을 찾은 뱀처럼 눈을 뜨고 인생의 쓰디쓴 술잔을 마셔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은 인생의 통속성과 죽음의 무의미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처량한 목마소리, 쓰러지는 술잔 소리와 대비되어 인생의 허무와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에 대한 서러움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시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동시에 전후 박인환의 인생에 대한 절망감, 허무감을 잘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인생은 통속적인 것인데 자살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지만 실제로 절망 속에서 끝내 자살로 삶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류작가와 우리 전후의 절망적인 삶이 대비되어 있는 것이다.

박인환은 시집 후기에서 현대를 불안과 위기의 시대로 파악하고 반인간, 반생명적인 현대문명의 산물들로부터 진정한 시민정신, 즉 시의 원시림을 추구하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 시민정신이란 폭넓은 개념으로 제반 비인간적인 현대문명의 산물들과 대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크게 비인간적인 것과 대립되어 순수한 인간성, 인본주의의 추구와 신식민지적 음모와 대립적으로 민족의 주체적인 삶의 추구를 의미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인본주의적 입장은 현대의 모든 가치, 사상의 위기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든 사상과 교리가 결함을 노출하고 위기를 드러내는 현대 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의 본능과 체험 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 대한 입장 역시 이러한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이반되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추종이나 현실과 유리된 복고적인 감상, 토속주의를 거부하고 순수한 본능과 체험에 의지하여 현실을 파악하고 현대문명의 여러 모순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인환의 시는 몇차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6.25 이전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그의 순수한 생명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추구, 그리고 민족 현실에 대한 관심이다. 순수한 삶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추구는 문명적인, 비인간적인 것과 순수한 인간적 욕구나 생명의지, 반항 등의 대립을 통해 제시되며 민족적 현실에 대한 관심은 해방직후 외세의 진주로 인한 신식민지적 문화의 침투와 민족문화 내지는 민족 정신의 대립을 통해 나타난다.

6.25 중의 그의 시는 주로 전쟁의 파괴와 살육에 대한 절망, 그리고 전쟁 상황 속에서의 실존적 선택의 문제가 중심이 되며 전후 박인환의 시는 살육과 파괴에 복종한 인간성에 대한 절망으로 인한 좌절과 허무감,그리고 센티멘탈리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반생명적인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원시림, 즉 인간성의 탐구라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박인환은 결코 현실과 무관한 딜레탕트도, 전형적인 속물주의자도 아님을 알 수 있다.오히려 박인환의 시는 초기시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여주며 전쟁과 관련된 시들은 파괴와 살육으로부터 인간적인 것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절망, 그리고 비극적 선택의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시 이데올로기 편향의 전쟁시들 가운데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것이다.

전후의 감상적 허무주의 역시 전쟁을 합리화할 수 없었던 50년대 가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소녀적인 감상으로 처리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한편 그의 시는 초기 시에서 후기시까지 전체 변화과정을 통해 초기의 진보적 경향으로부터 반공적인 이념으로 선회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변화는 전쟁이 강요하는 비극적인 선택과 관련된 것으로 우리 사회의 분단 고착화 경향을 반영해준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경성대 홈페이지 http://www.gsnu.ac.kr

     

[시인공화국 풍경들] <31>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감상에 버무려 절망을 어루만지다 - 센티멘털 저니
이국에 대한 선망으로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려한 문학청년의 내면적 풍경

박인환(1926~1956)의 20주기였던 1976년 3월 고인의 유족이 엮어 펴낸 시집에 ‘목마와 숙녀’라는 표제가 붙은 것은 자연스러웠다.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에게 호의적이었던 문학 동료들로부터 그의 대표작으로 꼽혀왔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몇 해 앞서 전파를 타기 시작한 가수 박인희의 토크송을 통해 라디오 방송 청취자들에게 매우 친숙해진 터였기 때문이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의 감상적 시행들은 이 시를 알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종이 위의 활자로서보다는, 그 시행들만큼이나 감상적인 배경음악과 거기 실린 박인희의 목소리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간행)는 시인이 작고하기 한 해 전(1955년) 출간된 ‘박인환 선시집’(산호장 간행)의 개정판 격이라 할 수 있다.

‘박인환 선시집’의 수록 작품을 거의 고스란히 옮기고 거기 빠져 있던 작품 일곱 편을 보탠 것이 ‘목마와 숙녀’이기 때문이다. ‘박인환 선시집’이 시인 생전에 나온 유일한 시집이므로,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의 시를 얼추 망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초기 작품인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1948)를 비롯해 몇몇 시가 빠져 이 시집이 박인환 시 전집이 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엄혹한 정치 상황에 대한 고려 탓이었을 것이다.

“전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방위와 인민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같은 선동이, 비록 시대와 대상을 달리해 발설됐다 하더라도, 유신 체제 아래서 버젓이 활자화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인환이 누린 생애는 서른 해에도 채 이르지 못했고, 그의 작품 활동은 생애 마지막 열 해 동안 이뤄졌다. 물론 20대의 10년은 큰 시인이 되기에 짧은 기간이 아니다. 소월이 그것을 증명한 바 있다.

소월처럼 요절하지는 않았지만, 서정주나 이용악도 이미 20대에 커다란 시인이었다. 더 나아가, 아르튀르 랭보는 10대 후반 다섯 해의 작업만으로 큰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누구나 소월이나 랭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시인에게는 이드거니 재능을 벼릴 시간이 필요하다. 박인환은 뒤쪽에 속했다.

연극이나 영화 쪽에까지 관심을 돌린 것을 보면 그는 장 콕토나 자크 프레베르처럼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전방위 예술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그의 시에 이진섭이 곡을 붙인 ‘세월이 가면’은 프레베르의 시에 코스마가 곡을 붙인 ‘고엽’ 만큼이나 시큼들큼하다), 한 산문에서는 위스턴 오든과 스티븐 스펜더를 향한 선망과 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이들에게 견줄만한 재능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들처럼 고종명하지도 못했다. 재능의 모자람에다 요절까지 겹친 시인들도, 특별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도움을 받으면, (부당한) 문학사적 위세를 누리기도 한다. 이상(李箱)이나 윤동주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박인환에게는 그런 요행도 없었다.

한국 시인으로서 박인환의 가장 큰 불행은, 그 세대 시인들에겐 흔한 일이었지만, 한국어가 서툴렀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세대에 속하는 한국인들은 학교를 비롯한 공적 공간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가정을 포함한 사적 공간에서는 조선어를 사용하는 비대칭적 이중언어 상태(다이글로시아)에서 지적 성장기를 보냈다.

말하자면, 문화적 언어적 양서류가 되기를 강요받았다. 이런 생태 환경에 잘 적응한 종(種)은 물에서도 뭍에서도 편안하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종은 뭍에서도 물에서도 불편하거나, 적어도 한쪽에서는 불편하다.

박인환은 이런 생태 환경에 충분히 적응한 양서류가 아니었다. 일본어에 대한 그의 감각은 확인할 길 없지만, 적어도 그의 한국어 감각은 문필가로 행세하기에 넉넉지 않았다.

‘박인환 전집’(1986, 문학세계사 간행)에 묶인 그의 조악한 산문들을 살피면, 그의 시가 드러내는 한국어의 생경함이 단지 시적 허용의 과감한 실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박인환)는 일본말이 무척 서툴렀고 조선말도 제대로 아는 편은 못되었다”는 김수영의 비아냥은, 김수영 자신의 한국어가 썩 탐스럽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운치는 않지만, 박인환의 조선말에 관한 한 중상모략이 틈었뇩?p> 시집 ‘목마와 숙녀’에 자주 나오는 외래어(나 추상적인 관념어를 포함한 이른바 ‘문명 어휘’)와 이국적 이미지들은 그의 서툰 한국어를 치장하면서(말하자면 이 박래어들은 그것들이 명사의 꼴을 취하고 있을 때도 사실은 ‘형용사’다) 그 한국어의 서?을 도드라지게 한다. 그런 설익은 관념 취향이, 한편으로는, 박인환의 시가 잠시동안이나마 누린 대중적 인기의 비결이기도 했을 것이다.

“신문지의 경사(傾斜)에 얽혀진/ 그러한 불안의 격투// 함부로 개최되는 주장(酒場)의 사육제/ 흑인의 트럼펫/ 구라파 신부(新婦)의 비명/ 정신의 황제!”(‘최후의 회화’)라거나, “대륙의 시민이 푸롬나아드하던 지난해 겨울”(‘불행한 샹송’), “실신한 듯이 목욕하는 청년/ 꿈에 본 <죠셉 베르네>의 바다/ 연체동물의 울음이 들린다/ 사나토리움에 모여든 숙녀들/ 사랑하는 여자는 층계에서 내려온다”(‘서정가’) 같은 시행에서는 유럽인으로 살고 싶었던 제3세계 청년의 허위의식이 씁쓸하게 감지된다.

이 한국 청년이 “나신과 같은 흰구름이 흐르는 밤/ 실험실 창 밖/ 과실의 생명은/ 화폐모양 권태(倦怠)하고 있다/ 밤은 깊어가고/ 나의 찢어진 애욕은/ 수목이 방탕(放蕩)하는 포도(鋪道)에 질주한다”(‘장미의 온도’)고 노래할 때, 청자(聽者)는 대뜸 그의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한국어 명사 ‘권태’에는 접미사 ‘하다’가 붙을 수 없음을, ‘방탕하다’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임을 이 청년이 모르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가 “생(生)과 사(死)의 눈부신 외접선(外接線)을 그으며/ 하늘에 구멍을 뚫은 신호탄”(‘신호탄’)이라고 쓸 때, 독자는 ‘외접선’이라는 비유가 그 겉 멋에도 불구하고 흐리터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진다.

‘목마와 숙녀’의 적잖은 시들은 고물 텔레비전 같다. 전류는 흐르는데 화면은 가로띠 무늬로 뒤덮여 있고, 지지거리는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한두 세대 전의 고장난 텔레비전 말이다.

그 시대엔 텔레비전이 문명의 상징이었듯, 이 시집은 문명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 이미지들은 자주 단절적이어서, ‘목마와 숙녀’의 언어를 ‘구조물’이 아니라 ‘분위기’로 보이게 한다. 이런 문명의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박인환이 모더니스트가 되지 못한 것은, 거의 체질적으로 보이는 그의 감상주의 때문이다.

사실 감상주의는 ‘목마와 숙녀’ 전체를 휘몰아 가는 동력이다. ‘목마와 숙녀’를 분위기의 시집이라고 할 때, 그 분위기는 센티멘털리즘인 것이다. 시인은 동인지 ‘신시론(新詩論)’과 동인 그룹 ‘후반기(後半紀)’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모더니스트를 자임했으나, 그의 ‘모더니즘’은 1980년대의 민중문학 못지않게 감상주의에 감염돼 있었다.

이런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목마와 숙녀’는 한 번 읽어볼 만한 시집이다. 이 시집은 1920년대에 태어나 태평양전쟁의 실감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해방과 더불어 성년을 맞은 뒤 곧바로 참혹한 내전을 겪은 조선 문학청년의 평균적 내면풍경을 보여준다. 그의 제스처가 과장된 만큼이나 그의 황폐한 내면은 더욱 또렷하다.

분단과 전쟁으로 찢겨진 옛 식민지 출신 청년이 이국에 대한 선망과 감상주의로 제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 궁핍한 시대를 버텨내려고 했을 때, 그 안간힘이 안쓰러울 망정 그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감상주의에 버무려진 대로 이 시집에 그리도 자주 나오는 죽음의 이미지는 이 청년 시인이 살아낸 연대가 그대로 죽음의 연대였음을 증언한다.

게다가 이 시집은 시인 박인환이 ‘목마와 숙녀’나 ‘세월이 가면’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 사람의 가족’이나 ‘어린 딸에게’ 같은 작품에서, 시인은 얼치기 댄디의 옷을 벗어던지고 한 가족의 책임있는 가장으로서 시대와 결합한다.

전시(戰時) 피난열차에서 그가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검은 강’)고 썼을 때, 짤막한 미국 방문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마음만의 신사(紳士)”(‘에베레트의 일요일’)였음을 깨달았을 때, 그의 시와 세계관은 새로운 지평을 겨냥하고 있었다. 한국문학을 위해서, 박인환은 더 살았어야 했다.

출처 : 한국일보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http://www.hankooki.com/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