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 정 희 전 대통령 약력 (朴正熙,창씨명 關本實,1917~1979) 1942 만주 신경군관학교 졸업 창씨 개명 : 오카모토 미노루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해방 전 소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이다. 몇몇 재중동포들이 기억하는 ‘마쯔모도’도 있지만 이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의 두 이름은 시기와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다음해인 1941년에 바꾼 것이다 개쓰레기 (절대, 제 개인적으론 언론인'이라 여기진 않습니다, 전형적인, 이기의 사대주의를 이 글의 주제와 동일시해 뭍어가는 전형적이고 운명적인 아류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는 뒷골목에 있는 것 : 사무실을 찾아보니 쓰레기 통이 없네요..? 이상하네..) 언론인 조갑제는 저서(가 아니고 아마 이 인간이 쓴 건 모두 쓰레기라 표현 함이 제 개인적으론 맞다 여깁니다) ‘박정희’에서 “군관학교에서 한국인 생도들에게 1주일씩 휴가를 주며 ‘고향에 가서 창씨개명을 해오라’고 시킨 것이다. 퇴교 등 명시적 협박은 없었으나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동기생들은 말한다” 고 밝혔다 이 이름엔 원래 박정희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목(木)은 박(朴)에서, 정은 정희에서 따온 것이라서다. 이처럼 강압적 분위기에서 원래 이름의 흔적을 남기며 창씨개명하는 게 그 시대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카모토 미노루’는 다르다. 우선 조선 이름 ‘박정희’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재일 언론인 문명자 씨는 1999년 발간한 저서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기 마사오. 그 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꾼다”고 기술했다. 일본 백과 사전엔 박정희의 창씨명이 오카모토 미노루로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김병태(79) 건국대 명예 교수는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됐는데 거기 연대장의 이름이 오카모토였다”며 일본군 고급 장교와의 관련성을 시사했다.
나의 조국(박정희 작사·, 작곡) ♪ 가사 2.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 3.남북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정신을 ♬ 해설 조국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던 박정희의 원대한 비젼(욕심, 혹은 야욕)이 잘 표현된 노래이다. '건설', '영롱', '새 역사', '창조', '영광'... 온통 희망적인 용어들로 가득하다. 박정희가 우리 민족사에 가장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후다닥 재판 끝내자 마자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실한)이 있다면,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독재자 밑에서 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하다가 총맞아 죽는거 보는거) 마음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노래 가사에는 그런 도도한 자신감과 굳센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에 걸맞게 군가풍의 곡을 붙였다. 조국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던 박정희의 원대한 비젼(욕심, 혹은 야욕)이 잘 표현된 노래이다. '건설', '영롱', '새 역사', '창조', '영광'... 온통 희망적인 용어들로 가득하다. 박정희가 우리 민족사에 가장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후다닥 재판 끝내자 마자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실한)이 있다면,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독재자 밑에서 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하다가 총맞아 죽는거 보는거) 마음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노래 가사에는 그런 도도한 자신감과 굳센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에 걸맞게 군가풍의 곡을 붙였다. ▲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 2판에 소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력 일본 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기록돼 있다. 이 사전은 동경대학출판회가 2005년 8월15일 발간한 것이다. ▲ 수석 졸업하는 박정희 생도 신경 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만주일보 1942.3.24) ▲ 만주군 예비 소위 박정희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졸업 후 2개월 간의 사관 견습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말 일본군 소조(曹長, 상사에 해당) 복장으로 찍은 모습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웠던 친일파 박정희는 만주에서 독립군의 뒷꽁무니를 쫓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18년 동안 대통령 질을 하는 호강을 누렸지만 불굴의 의지로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던 약산 김원봉의 불꽃같은 항일 투쟁은 남과 북에서 철저하게 잊혀져야만 했다. 유난히 사꾸라를 좋아했던, 그리고 근본 정치보다 음란 정치를 좋아했던 박정희 아니 쪽바리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그의 이미지 미화 작업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울 수 없는 역사를 보고 있다. 아 ~ 씨바~ 얼마나 아름다운가~ 조또...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다까끼 마사오의 정신이 깊이 박혀있다는 것을... 이 노래.... 김어준과 내가 같은 또래였으니.. 그도 똑같이 두뇌에 박혔으리라... 이것을 빼내기는 쉽지 않을 터...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미화작업.친일파 박정희의 기념관이 서울 한복판에 우뚝어 있다. 참으로 조까튼 국가에 살고있다. 친일파를 없애야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다. 선거 아무리 해봐라. "신"일파 들까지 없애지 않는 이상 우리의 조국, 국민들과 아름다운 강산은 무참히 파괴될 것이다.
2012년 6월 13일 밤. 오늘 술 한잔하고... 백수재에서 어리버리 돈키호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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