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늙은 군인의 노래 - 김민기, 양희은│호국보훈의 달에 붙여...

리차드 강 2009. 6. 10. 14:11

늙은 군인의 노래 - 양희은

양희은 초반 (서라벌레코드 1979)

양희은 Yang Hee-Eun 1952-

Side A No.3 - 늙은 군인의 노래

 

늙은 군인의 노래 - 김민기 사, 곡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 가세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퇴역 부사관의 회한 담긴 늙은 군인의 노래

이미지 출처 = 이녁의 무너진 세계, leenyuk.egloos.com

이십 년 전, 곰PD 군대 시절 중대 인사계 박 상사님은 자그마한 체구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이셨죠. 엄한 첫 인상과는 달리 생활하면서 지켜 본 인사계님은 속 깊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전출이 잦은 장교와는 달리 대부분의 군 생활을 한 곳에서 하는 것이 부사관 들인지라 인사계님도 강원도의 그 삭막한 전방 산골에서 삼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셨지요.

강원도의 한겨울 날씨는 혹독하게 추웠습니다. 당시 내무반별로 설치된 빼치카 라고 불리던 벽난로는 막사 현대화 작업에 따라 기름보일러로 점차 바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보일러를 데우는데 필요한 기름이 언제나 모자랐다는 것이죠. 인사계님은 퇴근 후에도 안심이 안 되셨는지 새벽 2, 3시에 꼭 한 번씩 들러 막사의 난방 상태를 확인하곤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는데도 쩔뚝거리며 병사들의 잠자리를 보러 오셨죠. 일직하사나 보일러 관리병 에겐 병사들 춥지 않게 아끼지말고 보일러 돌리라고, 기름이 모자라면 자신이 구해온다고 하셨다더군요. 병사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형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엄격해야할 땐 군인의 엄정함을 보여주셨던 분이셨죠. 전역한 뒤론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이미 예순을 훌쩍 넘기셨겠네요.

곰PD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박 상사님이 떠올립니다. 직업군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는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보았지만, 특히 부사관 들의 생활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 겨울 전방의 비좁은 군인관사에는 수도관이 얼어 터지기 일쑤였고, 문화 시설은 커녕 기본적인 생활 시설도 변변찮아,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 본적이 많았죠.

이 노래에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김민기 씨는 70년대 저항가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죠. 1974년 10월, 잠시 노래를 접어 두고 군대에 간 그가 배치를 받은 것은 용산의 미군방송(AFKN)이었습니다.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카투사, KATUSA) 신분으로서였죠. 하지만 그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삼선개헌에 반대하던 가톨릭 단체들의 집회가 명동성당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그의 저항가요들이 불릴 예정이었죠. 하지만, 정보가 미리 새면서 행사는 무산 되었고, 김민기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수사기관이 그의 입대 사실을 알고 군 당국에 통보하면서 그의 짧았던 카투사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보안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그가 재배치되었던 곳이 강원도 최전방,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의 바로 그 원통이었습니다. 사단영창에서 보름을 지내고 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에 배치된 그는 여느 소총수들과 같이 고달픈 군 생활을 해야 했죠. 그리고 그곳에서 삼십 여 년의 군 생활을 접고 전역을 하는 병기 선임하사의 부탁을 받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막걸리 두 말이었죠. 1976년 겨울,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바로 ‘늙은 군인의 노래’였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가 수록된 양희은의 앨범, 1978년.
서라벌, 1979년, 김민기/양희은 작곡, 금지된 음반 자켓,

젊은 청춘을 푸른 군복에 바친 한 부사관의 회한과 아쉬움, 소박한 나라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는 곧 병사들에게 구전되어 불려졌습니다. 그가 제대한 후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78년 양희은의 이름을 빌려 문공부 심의에는 통과하지만 곧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됩니다.

군부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의 약하고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습니다.

유신체제하에서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가 된 이 노래가 그 생명을 이어간 것은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현장 이었습니다. 원래 가사속의 군인은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어지면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탈바꿈하며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블러그 곰PD의 전쟁이야기

     

늙은 군인의 노래 - 김민기

김민기3 (서울음반 1993)

김민기 金敏基 / Kim, Min-Ki 1951-

Side B No.1 - 늙은 군인의 노래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