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삶 즐기는 ..

사진으로 떠나는 길...

리차드 강 2009. 6. 16. 12:31

사진으로 떠나는 길...

출처 : 인터넷 한겨레

     

‘휘리릭 ~ ~ 샤샤샥…’

가을 단풍이 작은 동네 공원 나뭇잎에도 내려앉은 11월하고도 이틀이 지난 요즘, 혹시 들리시나요? 가을이 재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그 가을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백담사 앞 계곡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가을처럼 붉고 노란 옷을 입은 친구들이 만났습니다. 그러곤 잠시 가을을 멈춰 세웠네요. 여러분도 이들처럼 가을의 한가운데를 멈춰 세우러 떠나시는 건 어떠세요? 가을이 징검다리 건너듯 성큼성큼 개울을 가로질러 사라져버리기 전에.

인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길을 떠나기 전에는 설렘이 있습니다. 설렘을 넘어 흥분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말뚝박기를 할 때 이긴 편이 말을 향해 출발하려면 그 흥분이 전율에 가깝습니다. “막 달려서, 부-웅 날아서, 쾅 앉으면…, 와지끈” 이런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부르르 떨려 옵니다. 하지만 가장 세게 흥분하는 쪽은 말뚝을 박고 있는 진 편입니다. 정작 달려오지도 않으면서 이쪽을 노려보고 선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동안 그 긴장감은 극에 달합니다. 서울에서 차를 달려 6시간, 거제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30여 분 만에 외도 해상농원에 도착했습니다. 설렘이 여독 탓에 다 풀어져 갈 때쯤, 이 절묘한 조각상을 만났습니다. 그 덕분에 여행 내내 ‘말뚝박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외도/이정우 기자 woo@hani.co.kr

     

짙푸른 녹음이 길을 안내하고 있는 의정부시 장암동 시골길 한옆에 분홍빛 들꽃이 행인들을 도발하고 있습니다. 수확의 계절이 오면 푸른 잎들은 가을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형형색색의 꽃들도 유혹을 멈추고 탐스런 열매들에게 자리를 내줄 것입니다. 저마다 ‘성숙’을 향해 달려가는 가을의 문턱, 이제 화려함과 작별을 고합니다.

의정부/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사람이 만든 길과 자연이 만든 길이 나란히 갑니다. 곧게 뻗은 사람의 길은 빠르고 편하지만, 큰비가 오고 나면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가 일쑤입니다.

시흥/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밤으로 가는 길. 종일 대지를 달구던 해가 뉘엿뉘엿 산그늘 뒤로 모습을 감추고 세상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마지막 열정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낮 동안 일어난 수많은 사연들도 그 빛 속으로 서서히 잠기고, 이제 편안한 휴식과 달콤한 꿈을 위한 밤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늦가을/ 잎새 떠난 뒤/ 아무 것도 남김 없고/ 내 마음 빈 하늘에/ 천둥소리만 은은하다” (김지하 시인의 〈늦가을〉) 가을걷이도 끝나고 모든 것을 잃은 텅 빈 들판이 모자이크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이기고 결실의 계절을 지난 들판의 허허로움. 고단한 인생길처럼 벌판을 가로지르는 길엔 농부들의 피 같은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을 겁니다. 그 위로 나그네를 태운 비행기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갑니다.

선양/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얼마나 많은 길과 맞닿아 달렸을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팽팽했던 젊을 적 탄력은 사라진 지 오래, 지나온 길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하지만 쓰임새를 다하고 공원묘지 한켠에 쌓여 있는 바퀴들은 또다른 새 삶을 꿈꿉니다. 고무와 아스팔트,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르나 분명 이것이 끝은 아닐 터. 그래서 이들은 죽은 듯 보여도 죽지 않았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잠시 쉬고 있는 그네들 너머 새 길이 보입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랴! 이랴! 이놈의 소가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충북 단양군 적성면 기동리에 사는 농부 이수현(66)씨가 쟁기질에 나선 소를 앞세우고 비탈밭을 갈며 비지땀을 흘린다. 경운기가 들어올 수 없는 다락밭을 일구던 이씨는 “내가 죽으면 이 땅도 묵히겄제?”라며, 쓴 담배를 털고 다시 소를 재촉한다. 산비탈에 힘들여 심은 콩이 큰 수확은 안되겠지만, 우직한 소를 따라 쟁기에 힘을 주고 묵묵히 뒤따르는 게 농부의 길인가 보다.

단양/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백의민족의 영산 백두산, 비록 중국 땅을 통해 오르긴 하지만 그 곳에 내가 오른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고 기대가 되었던 2744m 높이의 한반도의 성산. 백두산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다시 차를 타고 20여분을 가니 주차장이 나타난다.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드디어 내가 백두산을 오른다는 기대감에 젖어 걷기 시작한 길은 경사가 지긴 했지만 평평한 차도였다. 조금 가다보면 산길로 들어서겠지. 그러나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내 앞에 나타나는 차도. 걷기에 불편할 정도로 연방 지프들이 굉음의 경적을 울려대며 오르내린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걷기를 시작해 서너 시간이 지나니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그런데 자꾸만 속에서 실망감 같은 것이 밀고 올라온다. 백두산 꼭대기까지 뚫린 차도가 나를 기쁘게 하지 않고 우울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이 관광지로 개발한 백두산의 모습이다.

백두산/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간다. 집에 다다르면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으면 좋겠다. 친구랑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하나 사서 함께 먹으며 걷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산골마을 외딴집으로 가는 길엔 동무도 없고 멀기만 하다. 아스팔트길을 한참 걷고 나서도 산길로 시오리를 더 가야 하는 집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다. 과자 대신 찐 감자가 기다리고 있겠지. 감자 두세 알을 먹고 나서 엄마·아버지가 일하는 밭으로 나가볼 거다. 학교 문을 나설 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지만, 집에 도착하면 갓 받아낸 샘물 한 주전자 들고 밭으로 달려가야지.

인제/사진·글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무더위와 일상에서의 탈출을 외치며 떠납니다. 전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숨이 턱에 차고도 모자라 헐떡헐떡 넘어야 하는 고산준령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굽이 돌며 계곡을 바라보고 저 굽이 돌며 산골 외딴집을 바라보는 재미, 드디어 구름이 걸린 고갯마루에 닿으면 어김없이 반겨주는 휴게소에 들러 쉬어가는 재미 또한 여행의 추억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이야깃거리들입니다. 한데 우리는 이제 단숨에 터널을 통해 그 길을 지나고 맙니다. 토목기술의 발달로 큰 산을 넘던 고갯길은 거의 대부분 십리가 넘는 긴 터널로 바뀌어 우리에게 빠른 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빠른 길이 우리의 인생마저 급하고 메마르게 하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번 여름 여행길엔 한번쯤 옛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넘어보십시오, 한결 여유롭게…

동해/사진·글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고운 편지지와 정갈한 봉투를 꺼내 편지를 씁니다. 이 말이 어울릴까 저 말이 어울릴까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며 쓴 편지, 침 묻혀 꾹 눌러 붙인 우표가 혹시나 떨어질까봐 걱정도 합니다. 편지를 빨간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면 그때부터 답장을 기다리지만 빨라도 4~5일은 걸려야 답장을 받아 보겠지요. 그 느림이 결국 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편지는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문자나 이동전화 그리고 인터넷 편지에 밀려나고 결국엔 전국의 빨간 우체통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해마다 3000여 개씩. 경북 안동시 와룡면 대곡리 마을 어귀 전봇대에는 아직 빨간 우체통이 매달려 있습니다. 젊은이들을 도회지로 떠나보내고 남아 산과 들을 굽은 허리로 지켜내는 노인들처럼.

사진·글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늦가을 늦은 오후, 뉘엿뉘엿 지는 해의 흔적이 안동 하회마을 뒷동산 너머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해는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산도 들판도 가을빛에 물들어 노랗고, 은행나무는 더욱 샛노랗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면 샛노란 은행잎은 바닥에 떨어져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잎을 잃은 은행나무는 겨울나무가 되겠지요. 저 해가 몇 번 더 산을 넘어가면 12월입니다. 이렇게 또 한해가 가는군요.

사진·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상하수도 맨홀 뚜껑, 길거리 보도블록, 건물 실내 바닥, 동네 공원 산책길 고무바닥….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발밑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지만, 우리는 그리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창을 통해 눈에 들어온 길바닥을 찍힌 그대로 여러 장 이어붙이니, 재미있는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바쁜 일상에 길바닥처럼 매일 무심히 왔다갔다 스쳐 지나가는 가족 혹은 직장 동료, 친구, 이웃 등의 얼굴들. 이들의 모습도 관심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면 새롭게 다가오겠죠? 길바닥 표정 모자이크는 한번 더 이어집니다.

사진·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파란 바다 위 섬으로 향해 달리는 배들이 하얗게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시야가 탁 트인 바다에도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따로 있습니다. 지난 1일 진도 앞바다에서는 어선과 유조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느 곳을 향해 흘러갈지 순간순간 판단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길도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물보라처럼 올곧게 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이번엔 까칠까칠하거나 반질반질한 여러가지 질감을 가진 것들을 모았습니다. 큰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하루종일 흙 한번 밟을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볼 수 있는 길바닥 풍경들도 모두 인공적인 것들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스배관공사를 한다고 시멘트 바닥을 뜯어낸 집 앞길 도로에 누런 흙이 드러났습니다. 흙바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찍어 모음사진에 이어붙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흙바닥은 다시 아스팔트로 포장돼 사라졌습니다.

사진·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항상 그렇지만 정말 숨가쁜 한 해였지요? 해넘이를 보려고 바삐 차를 몰고 도시를 떠나 석모도 해변을 찾은 시민들…. 아뿔싸! 한발 늦으셨네요. 이미 해는 바닷속으로 풍덩 빠지고 검푸른 빈 하늘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지각생’들 앞에 화려하진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2005년이 여러분께는 어떤 해였나요? 좋은 추억도 남았을 테고 때론 잊고 싶은 일들도 있었을 테지요. 해넘이를 놓쳐도 뜻밖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자연의 섭리처럼, 희망으로 또 한 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진으로 떠나는 길’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침표 콕!

강화/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로마 바티칸미술관의 출입구로 쓰이는 달팽이 모양의 아름다운 나선계단입니다. 이 계단은 건축가 주세페 모모가 1932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 오르비에토에 있는 깊이 약 62미터 우물의 나선형 계단에서 착안해 설계했습니다. 미술관 계단의 모델이 된 이 우물은 1527년 독일 용병의 로마 점령 때, 적을 피해 오르비에토로 피신한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시민들의 안정된 식수 공급을 위해 계획하고 건축가 안토니오 다 상갈로 조바네가 실현했습니다. 적의 공격 위협과 가뭄 속에서 시민들이 우물 천장을 통해 떨어지는 아름다운 빛을 등에 지고 생명수를 구하러 계단을 내려갔다면, 바티칸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등 세기의 작품을 둘러본 관광객들은 무엇을 구하러 계단을 내려갈지 궁금해집니다.

바티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니야! 그쪽이 아니라니까…, 그래, 그래 좋아 이쪽으로.” “저기 출구가 보인다… 생각보다 어렵네.” 제주의 ‘김녕미로공원’에 가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소리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10여분 만에 쉽게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1시간이 지나서도 못나오는 길치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함께할 ‘길벗’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복잡한 미로 속에서 머리를 맞댄 채 함께 지도를 보며 길을 찾을 수도 있고, 먼저 나간 벗들이 미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다리 위에서 길을 가르쳐 줄 수도 있으니까요. 입구부터 출구까지가 훨씬 긴 인생길. 옆자리에 버티고 선 가족과 연인, 또 친구가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요. 한손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또 한손에는 삶의 지도를 움켜쥐고 행복의 출구를 찾아 힘차게 떠나시길….

북제주/사진·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01101101001…, 디지털 코드인 이진수 1과 0의 배열처럼 잘 정돈되어 있는 층계가 보입니다. 그 층계의 양쪽 끝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고, 한 사람은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두 사람은 마치 가상현실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10여m 떨어진 물리적 공간을 사이에 두고도, 모니터 창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눕니다. 간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모르게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사진 속의 사람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두 발로 층계를 내려오거나 올라가 중간쯤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제가 봤냐고요? 바빠서 이만….

파리 센강 둔치/사진·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밤 11시29분. 오늘의 마지막 경의선 열차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을 백마역에 내려준 뒤 어두운 철길을 밝히며 북쪽으로 향합니다. 그 옆 산책로에는 저녁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철길을 따라 걷습니다. 저 철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가다 보면 개성도 나오고 평양도 나올 테지요. 지금은 임진강역에서 모두 내려야 하지만, 신의주역을 지나 만주 벌판까지 달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고양/사진·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덥다. 정말 덥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가마솥더위로 축 늘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돌벽 위를 줄을 지어 열심히 오릅니다. 이들은 일개미들입니다. 일개미는 집 밖에 나가 먹이를 구해 오고, 집을 지키며 애벌레를 보살피는 본능을 타고났습니다.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현대의 우리 노동자들은 일개미와 다를 바 없는 숙명을 타고났습니다. 또 일개미들은 먹이를 작은 주머니에 저장하고, 조금씩 토해내 입에서 입으로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답니다. 사진 아래의 개미들이 지금 지친 동료들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는 것 같습니다. 올여름 동료들에게 베푸는 여유를 가져보십시오. 꼭 입으로 전해주시지는 않더라도….

오대산 월정사/사진·글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불면의 긴 밤을 하얗게 지샌 뒤 멍한 눈을 들어 바라본 새벽하늘에서, 먼 나라를 향해 떠나는 비행기가 만들어낸 비행운을 보았습니다. 새로 떠오른 붉은 해가 대지를 밝히고, 선뜻한 새벽바람이 머릿속 안개를 걷어갔습니다. 그리고 끝 간 데 모를 두 줄기 궤적은 누굴 바라는지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바람이 단풍 든 산을 넘으면 바람에도 단풍 빛이 묻어 한결 따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시절, 하릴없이 가을을 좋아했던 그 마음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단풍 든 산을 넘은 바람이 길가 미루나무를 간질러대도 그냥 을씨년스럽단 생각부터 합니다. 그 바람결에 떨어져 길 위에 흩날리는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백구와 함께 ….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곧 누군가 저 길을 걸어 내게로 올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을인가 봅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2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이란 함성이 귓가에 쟁쟁하지 않습니까?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남대문과 태평로까지 이어졌던 붉은빛에서 뿜어나온 그 열기와 함성을 말입니다.
올해는 독일에서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립니다. 2002년과 달라진 점은, 잿빛 아스팔트가 걷히고 물이 흐르는 청계천과 행인을 유혹하는 화려한 불빛이 도심을 수놓고 있는 것입니다. 걷기가 한층 편해진 도심 거리에서 붉은옷을 다시 꺼내 입고 소리칠 생각을 하면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토고 누르고, 스위스 꺾고, 내친 김에 프랑스까지 잡아버리자고요!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소망은 늘 간절합니다.

2006년 새해 첫날 서울 광진구 아차산에서 열린 해맞이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새해 운세를 기원하는 ‘소망의 길’ 위에 놓인 각종 운세판을 밟으며 지나고 있습니다. 건강운·합격운·금전운·직장운·결혼운 등 어느 운세가 더 소중하달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인파에 떠밀려가면서도 자기가 바라는 운세판을 밟고 지나려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목표로 삼은 운세판을 기어코 밟고야 맙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 애쓰지 않았는데 저절로 다가오는 운세는 없다는 것을 ….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유·갈매기·꿈

언제부터였는지 언제까지일는지….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 부는 대로 맘이 내키는 대로 흘러가는 자유로운 날갯짓.
자신이 이미 겪어본 세계 저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것은 모든 생물체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본능이 아닐까?
삶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높이 날아 멀리 보고 싶은 꿈을 꿔왔는지 모른다.

사진은 피스보트를 타고 105일간의 세계일주를 하는 도중, 대서양 들머리에서 만난 갈매기를 배의 조명을 이용해 촬영했다. 갈매기와 파도가 빛을 반사하며 궤적을 그리는 모습을 장시간 노출로 찍은 것이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북망산천 가는 길도 신호등

“북망산천 멀다더니 건너 앞산이 북망이었네.”
선소리꾼의 구슬픈 상엿소리가 요령소리에 묻어 퍼지면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제들의 호곡이 뒤따른다.
어느 시골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꽃상여 장례행렬도 이제는 쉬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구봉부락 앞길, 꽃상여 행렬이 건널목 신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더니 빨간불이 켜진 뒤에야 가던 길을 재촉한다.
북망산천으로 되돌아가는 길도 신호를 받아 섰다 가는 걸 보며, 우리들 사는 하루를 되돌아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6/01/24]

     

어느 물고기의 꿈

400만 년 전 큰바다에서 생겨난 물고기는 현재 지구상에 3만여 종이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물고기는 자신의 입으로 들어온 물을 아가미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힘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을 날고자 애쓰는 물고기도 있다.

‘날치’(플라잉 피시)라는 이 물고기들은 바다여행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신기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물위를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마치 “제가 물고기일까요, 새일까요?” 하고 묻는 듯하다.

날치는 사람 손가락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성어가 되면 400m까지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꼬마 탈주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2006/01/31]

     

붉은 바다… 한 포기 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교외로 약 한 시간 반. 모래먼지 자욱한 길을 차로 달리면 붉은 바다가 펼쳐진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발자국은 바람이 만든 모래 물결에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피를 머금은 듯 붉은 그 사막에 한 포기 풀이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간다.

리야드/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6/02/07]

     

해를 안고 달리는 아이들

겨울방학의 끝자락, 자연을 찾아나선 아이들이 입춘 추위에 얼어버린 얼음장 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해를 안고 달립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시간만 나면 마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듯 컴퓨터 게임에 매달립니다. 그나마 자유롭게 바깥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볼 수 있어, 밝은 햇살이 더욱 고마운 오후였습니다.

“자연을 벗삼아 자라는 아이들이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그 자연을 지키고 가꾸는 마음을 가진다”는 당연한 얘기가 아이들의 짙은 그림자처럼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과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6/02/14]

     

안개 자욱한 밤… 눈 부릅뜨고 나아갑니다.

밤으로 가는 길,
샛강에 안개가 자욱이 깔렸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살면 살수록 인생길은 ‘오리무중’입니다.
앞이 잘 안 보인다고 멈춰 설 순 없습니다.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예기치 못한 피해를 줄 수야 없지 않습니까?
평소 익힌 대로, 조심스레 눈을 부릅뜨고 나아갑니다.
곧 짙은 안개가 걷히고 푸른 새벽하늘이 열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2006/02/22]

     

버려진 양배추, 얼어붙은 농심

수확을 하지 않은 채 겨우내 밭에서 얼어버린 양배추들이 3월에 내리는 강원도의 눈을 이고 누워 오가는 이들에게 손짓한다, 아니 소리친다. 지난 가을 이 밭고랑에 주저앉아 담배가 꽁초가 될 때까지 깊게 피웠을 농부의 타는 속을 아느냐고….

강원도 정선읍 광하리/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6/03/07]

     

대추리 들판에도 ‘파란’ 봄이 올까…

봄이 오는 길목, 평택 대추리·도두리 들판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예전 바닷물이 들고나던 개펄에 둑을 막고, 여러 해 소금기를 뺀 뒤에야 옥토로 만들 수 있었던 논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미군기지로 바뀌면 더는 농사를 짓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한평생 농사를 지어온 도두리 조동근 할아버지가 답답한 마음에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쐬러 들판에 나섰습니다. 곧 대추리·도두리 들판도 파란 새싹들로 옷을 갈아입겠지만, 할아버지가 올봄도 모내기를 할 수 있을지는 자욱한 안개처럼 뿌옇기만 합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6/03/14]

     

직선과 오돌토돌한 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최단거리로 치닫는 비행기가 긋고 지나친 하얀 선. 그 옆을 둘러싸고 있는 일본 교토 청수사의 오돌돌한 지붕선. 세상 일들이 지름길인 직선으로 진행되는 것이 도덕인 요즘, 비행기를 타고 찾아간 청수사 옛 건물 지붕선에서 천천히 에둘러 갈 수 있는 다른 방식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교토/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6/04/12]

     

“힘내요”

모처럼 맞은 휴일, 정말 오랜만에 산을 오릅니다. 싱그런 풀내음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산 아래쪽엔 이미 지고 난 진달래가, 산 위쪽에선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 좋은 산오르기를 왜 멀리했을까, 후회가 들 무렵, 숨이 차 오릅니다. 몸 구석구석에서 땀이 솟아오릅니다. 쉬었다 가라는 달콤한 유혹이 나를 주저앉히려 합니다. 동행한 이들을 따라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이내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냅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한고비 넘는다고 끄는 친구의 말도 아득합니다. 그렇게 땀으로 범벅이 돼 중턱에 올라서도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저 고개를 넘어도 더 올라야 할 텐데 …. “힘내, 이제 곧 정상이야!” 벗의 격려가 등을 밀어주는 듯합니다.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마음 터놓고 어깨동무할 이들과 산에 올라 봄이 어떨는지요?

도봉산/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2006/05/10]

     

My Way - Frank Sinatra

My way (Reprise Records 1969)

Frank Sinatra (1915 - 1998)

Side No.B1 - My Way (4:35)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